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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의 시가 기억나 찾아 옮겨 적었다. 시를 읽은 밤, 일을 조금 일찍 마쳤고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고 웃고 노래하고 밤길을 오래 함께 걸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방청소를 하고 창을 활짝 열고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를 한참 들었다. 탓, 낱말에 온기가 돌았다. 밤의 소리와 풀냄새와 이런 저런 풍경과 사람과 마음 같은 것들을 어느 탓으로 여겨보았다. 문득, 이따금, 나는 나의 몫으로 살고 있을까, 내 자리가 어딜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무얼까, 생각이 툭툭 떨어졌다. 생각을 줍고 싶은데 잘근잘근 밟기만 하는 것 같았다. 허공을 둥 헤맬 때, 어느 옛 흔적에 발이 묶일 때,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 내가 힘이 나지 않을 때,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 해가 질 때, 낯선 풍경에 있을 .. 2016. 8. 4.
일기예보 위젯에 그리운 곳 날씨를 띄워놓고 가끔 살핀다. 여기는 이렇고, 거기는 그렇구나, 어느 날씨를 계절을 공기를 사람을. 제주는 내내 비가 없다. 덥고 습한 공기가 훅훅 올라올 그곳의 한여름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프다고 한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는 늘 그렇지 한다. 나는 식사를 묻는다. 나는 병원에 가셨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나는 매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하는 일이 없다. 나는 매번 울음을 참지만 들키는 것 같다. 아버지는, 힘을 내라고 한다. 어느 단단한 말을 내가 하고 싶은데 속을 꾹꾹 누르고 네, 밖에 하지 못한다. 2016.7.28. 2016. 8. 2.
독서유랑, 이상의 집 공부 말고 이상을 스스로 마주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서촌을 느슨하게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책읽는지하철의 독서유랑단에 참여했다. 7월은 시 유랑. 비가 촉촉한 날, 사람들과 마주앉아 시를 읽었다. 이상이 두 살부터 스무 해 가량 살았다던 집, 이상의 방으로 짐작되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를 읽고 나누고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사람들이 모이니 시집 한 권에서도 저마다 고른 시가 같고 또 달랐다. 하나의 시에서도 마음이 닿는 곳이 같고 또 달랐다. 모더니스트, 천재와 같은 수식어로 인해 실은 온전히 마주하지 못했던, 시마다 머물렀을 그의 감정을, 풍경을 생각했다. 꽃나무를 다시 읽었다. 몇 해 전 어느 밤에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갈 수 없는 나무와 달아나는 나의 모습이 서글펐.. 2016. 7. 29.
달 그리고 시 "네게서는 달의 냄새가 난다. 너는 걷고 걷고 걷는다." 황인숙 시인의 '밤길'. 달의 냄새가 난다는 시를 생각했다. 달밤 꿈에 걸은 발자국에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다는 김옥봉의 한시도 생각했다. 가로등이 달 같은 밤. 자박자박 걷다 들어올 걸 그랬다. 글자를 아껴 감정을 담는 시를 닮고 싶은 날이 많았다. 시 같은 글을 동경했고 시 같은 마음을 동경했다. 말을 아껴야 하는 날. 감정을 아껴야 하는 날. 그리고 그러지 말아야 할 어느 날도 생각했다. 헤맸다. 2016. 7. 27.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을지로에서 충무로로 꺾는 길, 시그니처타워 앞에는 뼈만 있는 물고기 동상이 있었다. 그앞을 지날 때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가시고기를 생각했다. 가시만 남아 물고기의 입으로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바로 나오던 둘리 친구들과, 슬픈 눈을 꿈벅이던 물고기가 어른거렸다.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박연준의 시, 빙하기를 읽었다. 쏟아질 수 없어 가난했는지, 가난해서 쏟아질 수 없었는지 모른다. 결핍이 있어 허기진 것일지, 허기져서 결핍이 있는 것일지 모른다. 결빙이란 어느 때가 있는 것일지, 어느 방법이 있는 것일지 희미했다. 허기의 근원을 몰라 물고기는 슬펐을 것이라, 되도 않는 생각을 했다. 시는 너를 그리워하려는데 나의 한 조각이 스르르 결빙되었다 맺었다. 결.. 2016.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