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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마음 1. 일하다 졸음이 와 커피를 사러 가다가 동물병원에 들렀다. 아는 것이 없어 조심스레 물어보고 내 커피값만큼 간식을 조금 사 왔다. 아기 고양이 혼자 한 그릇을 거의 먹었다. 엄마도 오래 앉아 아기가 남긴 간식을 먹고 사료도 먹고 하품 하다 쭈욱 기지개 펴고 쉬다 갔다. 조금 살이 오른 것도 같고, 잘 먹고 눈을 마주해주는 시간도 늘어 그저 그 모습이 좋다. 아직은 섣부르지만 작은 생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참 오랜만이라 바라만 보아도 좋다. 오늘은 몸이 조금 으슬으슬했는데 창을 닫으면 고양이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봐 미뤘다. 엄마와 막둥이는 왔는데 아기 둘이 종일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된다. 내일은 꼭, 꼭, 오렴. 2. 십자수와 종이접기 책은 나누어주세요, 하고 아이가 남긴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먹.. 2016. 9. 29.
운현궁에 오랜 시간을 앉았다. 운현궁에 오랜 시간을 앉았다. 발길이 적은 뒤쪽 한곳에 오래 앉아 흐드러지게 열린 감을 보고 단청을 하지 않은 서까래를 보고 혼자 놓인 작은 아기 꽃신을 보고 노래를 들었다. 일곱 시가 되고 문을 닫을 때까지 조용히, 가만히, 납작히, 오래 앉았다.마음이 바닥에 앉았다. 아버지를 만나려고, 자전거를 타려고, 사람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는데, 문득 마음이 다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회복되지 않은 마음으로 찾고 싶지 않았다. 우울의 때를, 인정하자. 부정하면서 힘들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인정하자. 침잠하는 시간을 수용하자. 그리고 회복하자. 바닥에 더 앉지 않으려 걷는다. 걷고 걷고 헤매는 시간이, 이래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길어지고 있었다. 생각을 돌리려 낯선 길을 찾았다. 오래 걸어도 돌아온 .. 2016. 9. 26.
새 친구 사무실에 길고양이 친구들이 한 주째 온다. 그전부터 오갔던 걸 이제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잘 아는 국장님이 밥을 사다주었고, 사무실 식구들이 돌아가며 밥을 챙긴다. 출근할 때, 열두 시에, 서너 시쯤 새참으로, 여섯 시에, 꼬박꼬박 밥 먹으러 온다. 아가들만 조심스레 와서 먹고 가더니 어제는 엄마도 경계를 풀었는지 그릇에 얼굴 박고 폭 앉아 밥을 먹고 졸다 간다. 아가들은 놀고 나무를 타고 밥을 먹고 흙을 파고 똥도 누고 또 앉아 논다. 아가는 아가인지 세상 모든 게 신기한가 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도, 날아가는 벌레에도, 동그란 눈을 반짝거린다. 한 팔 거리에 앉아도 이젠 가만히 앉아서, 저 큰 동물은 뭔가 싶은 얼굴로 그 예쁜 눈을 깜박거린다. 일하다 창밖에 오가는 고양이들 살피는 일.. 2016. 9. 24.
조각 1. 천천히 걸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희자 이모는 기억을 조금씩 놓아가면서 밤거리를 몇 시간이고 걸었다. 그렁거리는 눈으로 답답해, 걷고 싶어, 말하는 얼굴이 나는 시렸다. 발이 부르트도록 한없이 걷고 싶을 때는 한없이 깊은 밤이었고, 나는 겁이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이따금 허했다. 2. 문득, 비합리적인 경로를 권하는 지도 앱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가장 오래 빙 돌아가는 버스의 번호 같은 것. 비합리적인 시간을 이따금 갖고 싶었다. 3. 밤이 아쉬워 새벽까지 여는 카페에 앉았다. 따끈한 우유로 허기를 재웠다. 내 방은 내 자리가 맞나, 내 의자는 내 자리가 맞나, 이 도시는 내 자리가 맞나, 따위의 생각을 했다. 살아온, 살다온 곳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싶다 말했다.. 2016. 9. 22.
길고양이들이 놀러왔다. 사무실에 엄마와 아기 셋 길고양이들이 놀러왔다. 점심시간에 맞춰 마당에 들어와 밥을 먹고 나무도 탔다. 경계심이 적은 아기는 형제들 밥까지 혼자 다 먹고 아기들끼리 하악거리기도 하고 엄마는 밥도 양보하고 아기들을 살피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가장 작은 아기는 높은 데 오르지 못하거나 담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야옹거렸다. 사무실에는 저녁밥 먹으러 고양이 친구들이 또 놀러와 오도독 밥을 먹고 슬리퍼를 물고 다니며 뛰었다고 했다. 자그마한 친구들을 한참 보면서 따끔거렸던 마음이 몽글거렸다. 2016.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