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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마음

by 리을의 방 2016. 9. 29.


1.
일하다 졸음이 와 커피를 사러 가다가 동물병원에 들렀다. 아는 것이 없어 조심스레 물어보고 내 커피값만큼 간식을 조금 사 왔다. 아기 고양이 혼자 한 그릇을 거의 먹었다. 엄마도 오래 앉아 아기가 남긴 간식을 먹고 사료도 먹고 하품 하다 쭈욱 기지개 펴고 쉬다 갔다. 조금 살이 오른 것도 같고, 잘 먹고 눈을 마주해주는 시간도 늘어 그저 그 모습이 좋다. 아직은 섣부르지만 작은 생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참 오랜만이라 바라만 보아도 좋다. 오늘은 몸이 조금 으슬으슬했는데 창을 닫으면 고양이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봐 미뤘다. 엄마와 막둥이는 왔는데 아기 둘이 종일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된다. 내일은 꼭, 꼭, 오렴.


2.
십자수와 종이접기 책은 나누어주세요, 하고 아이가 남긴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먹먹하다. 아팠을, 여렸을, 아이의 마음을 오래 생각하고, 어느 곳에서 꾹꾹 견디고 있을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는 일밖에 하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3.
어린 날, 작은 사람의 곁에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곁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과거형으로 맺고 있는 지금의 마음이 미워졌다.

4.
소식이 닫힌 지 육 년은 되었을까, 친구를 만난다. 시간의 결이 빚은 얼굴로 서로를 어떻게 마주할까. 어떤 말들을 할까. 꿈이 서로 닿기도 했던 지난날은 또 어디쯤 닿아 살아가고 있을까. 내일 입을 셔츠를 다림질하면서 주름을 꾹꾹 눌러 펴는 사이, 지금의 내가 건강하지 못해 나는 또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2016.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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