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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고양아, 고양아.

by 리을의 방 2016. 10. 13.
길고양이 식구들을 만난 지 한 달이 찬다. 세 주가 지나는 사이 아기들이 떠나 엄마 혼자 남았다. 한 아기는 별이 되었고 두 아기는 어디서 꼭 살고 있길 하며 마음으로 염려를 누른다. 아기들이 있을 땐 꼭 곁에서 지켜보고 밥도 항상 아기들이 우선이었던 모성이, 혼자가 되니 다시 어린 고양이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기 하나가 축 늘어졌을 때 야옹 야옹 가냘피 울던 엄마는, 이제 밥을 잘 먹고 가끔은 벌레를 잡고 놀다 혼자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현관이 열렸을 땐 사무실 안까지 들어와 쓱 출근을 하고 가기도 한다. 다행이다. 엄마 고양이 너는 잘 먹고 털도 보드라워지고 있어 참 다행이라고, 밥 먹는 굽은 등을 보며 그저 잘 먹는 모습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 식구일 때는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섣불리 정을 붙이는 게 아닐까 싶어 속으로만 조심스레, 쟤는 양말이, 쟤는 하양이, 쟤는 얼룩이, 그리고 엄마. 한 마리씩 번갈아 올 때마다 그리 찾았는데. 엄마 혼자인 지금, 고양아, 가끔은 야옹아, 엄마야. 그리 부른다. 실은 아직 이름을 붙이기가 조심스럽다. 이름을 부르지 못해도 부쩍 정이 붙었다. 밥때 오지 않으면 걱정스럽고 밥 먹는 등이 안쓰럽고 애틋해졌다. 고양아. 고양아. 왔어. 밥 먹어야지. 왜 그것만 먹니. 더 먹어야지.

가을밤이 부쩍 추웠다. 전기장판이 고장나 이틀을 오들오들 떨다가 새로 샀다. 전기장판을 배송받은 날, 고양이 너도 따뜻해야지 싶어 스티로폼 상자를 사다가 고양이 집을 만들었다. 고양이가 벽을 긁을 수 있다는 글을 보고 돗자리로 안팎을 붙이고 창밖 식사 자리 옆에 두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건드려본 것도 같은데 함께 밤을 난 게 아니니 잠을 잤을지는 모르겠다. 워낙 조심스러운 친구이니 집에 들어가게 조금 홀려보아야겠다 싶어 커피값만큼 캣닙과 간식 조금을 샀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네가 필요할 만큼. 조금씩 조금씩. 내가 따뜻하게 밤을 나는 만큼, 고양아 너도 따뜻하게 자야지. 이곳도 너는 조심스럽겠지만 조금이라도 편히 자야지. 고양아 너도 그리고 나도, 올 겨울을 잘 나야지. 건강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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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망가진 의자 쿠션에 앉던 아가. 오지 않은 지 한 주가 지났다. 콧물이 맺혀서 특히 걱정이었는데. 올 때마다 찍어두었던 사진들이 애틋해졌다.

꼭 천이나 깔것을 찾아 앉고, 자는 엄마.

월요일 낮, 안쪽 자리까지 쓱 들어와 밥 주는 사람의 출근을 확인하듯 둘러보고 5분도 안 돼서 퇴근했다. 실장님들은 새로 온 인턴이냐, 자율출근제다 했고 국장님은 고양이가 일 편히 한다 했다.

전에는 다가서면 뛰어 도망갔던 엄마는, 이제 밥 주는 사람이란 인식 정도는 생겼는지 쓱 쳐다보고 제 갈 길을 설렁설렁 간다. 얘는 밥을 다 먹고 나면 뭐하고 노나 싶어 살금살금 뒤를 밟는다. 짝사랑하듯 따라다니다 미안해지기도 한다. 쓱 쳐다보는 눈빛이, 고것 참 성가시네, 말하는가 싶어서. 뒤따르다 보면 누가 사람이고 누가 고양이인지.

마실 다녀와 쉬는 시간. 아기가 앉던 자리에 이제는 엄마가 폭 앉아 쉰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니 핸드폰이 신기한지 제법 가까이 얼굴을 내민다.

아기들과 함께 자라고 30kg 상자를 챙겨서 고양이 집을 만들었는데 혼자된 친구에게는 컸다. 오손도손 부대껴야 밤이 더 따뜻할 텐데.

퇴근하려다, 남은 간식을 그릇에 담고 있는데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슬금슬금 걸어왔다. 문을 잠시 열었더니 안으로 들어와 회의실 한 번 둘러보고 거긴 안 돼 했더니 나갔다. 밥먹는 곁에 벗삼아 멀찌감치 잠시 앉았다. 오늘은 실은 내가 벗이 필요했다.
고양아, 고맙다. 고양아, 잘 자렴.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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