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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설움과 입을 맞추는 것 김수영의 시, 거미 생각을 오래 했다. 결국은 혼자만의 생각이어서 발전할 것도 맺을 것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를 오래 생각하다가, 내 잘못을 생각하다가, 서러운 생각이 일었다. 아무래도 이 생각은 옳지 않은 것 같아 생각하기를 멈췄다. 서러운 것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란다. 바라지 않으면 서러울 일도 없었다. 바람, 바라지 않음. 반의관계이지만 그 사이 촘촘히 채워진 명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바라지 않으면 맺어지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감정의 풍경으로 치열하게 뛰어들 수도 없는 나는, 그저 우두커니 기다리는 방법밖에 몰랐다.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멍하니 있다가, 누워있다가, 일상의 순간 순간마다 생각이 들고 감정이 인다. 평탄하게 다져진 마음으로 사는 삶과, 어떤 감정이든.. 2015. 12. 28.
이병률, 찬란 호흡을 가다듬는 시가 있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있다. 한 구절 한 단어, 마디마디 담긴 의미가 명료하게 해석되진 않아도, 행간에 자간에 마음으로 전해오는 미묘한 떨림이 마냥 좋은 시들이 있어 이따금 시를 찾는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내려두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결국, 생각이라지만. 넋놓고 풍경을 보듯 정서의 풍경에 빠져 몇 번이고 곱씹는 시행의 울림에 위안받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시는, 소설 한 권만큼이나 내게 묵지근하다. 빛나는 단어는 내게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부터 궁극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하루를 딛는 일이 무거웠다. 하루를 잘 살아냈으니, 또다른 하루를 잘 맞이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동을 인정.. 2015. 12. 23.
전연재, 집을 여행하다 전연재, 집을 여행하다, 리더스 (2013) "같은 사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경험과 지식의 다름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는 보다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가능하게 했고, 이런 다양성은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근원이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이고, 시간과 돈을 들여 기어이 길을 떠나는 이유일 것이다. 반짝이는 눈빛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는 서로를 껴안기 위해." "식탁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크다. 삶의 가장 근원이 되는 음식을 나누고, 각자 만들어온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배를 채우고, 영혼을 살찌운다. 또 식탁 언저.. 2015. 12. 23.
허정허정 헤매는 날을 보내는 방법 대구역 근처였던 것 같다. 역을 조금 지나니 오래된 집들이 나왔다. 하숙집들이었는데 인부아저씨들이 사는 것 같았다. 맥아리 없이 허정허정 걸어도 낯선 곳이니 괜찮았다. 물집이 터지도록 헤맸는데 그날은 퉁퉁 부은 발마저 좋았다. 사진은 꽤 괜찮은 도구다. 오래 묵어도 그날의 질감이 살아난다. 자주 듣던 노래도, 끄적여둔 메모도 괜찮다. 끄적이는 일이 미니홈피에서 블로그로 이어졌다. 어떤 날은 못 견뎌서 찢거나 지우거나 버려두기도 했었다. 지금은 좋으면 좋은 대로, 버거우면 버거운 대로 안고 갈 수 있겠다. 진작 그랬으면 좋았겠다. 대학생 때 소설을 배우면서 일상을 과거형으로 쓰는 버릇을 들였다. 오랜 일처럼 쓰고 나면 어떤 일이든 안녕, 하고 잘 보낸 것 같았다. 그 버릇이 사진에도 번졌다. 오래된 느낌이.. 2015.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