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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실픈 밤, 그리운 밤 실프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슬프다. 정확히는, 실프다는 말에 맞장구칠 사람이 없어 허전한 게 맞겠다. 아 실프다. 무심코 뱉었다 다시 삼키는 말. 이상하게 그리운 말. 오늘은 그랬다. 하염없이 실퍼져서 일은 접고 나왔다. 영화 하나 보고 버스 기다리는 일도 실퍼져서 조금 걸었다. 오늘 서울의 밤은 소란스럽다. 영화 보고 탑동까지 자박자박 걸었던 내 잔잔한 밤은 덕수궁길로 대신했다. 길이 짧아 허전했다. 걷고 걷고 걸으면 바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미소 지으라고 기은이가 보내준 바다 사진 보며 마음을 채우는 밤. 내 잔잔한 밤. 2015.5.17. 2015. 12. 28.
그 마음이면 동네 학교 걸어다니던 중학생 때, 버스 타고 학교 다니고 싶다는 낭만이 있었다. 고등학교, 한 시간 반 걸리는 통학길은 낭만은커녕 지옥이었지만 그때부터 노래들이 내 좋은 친구가 되고 약이 되고 밥이 되고, 그랬다. 음악이 좋고 영화가 좋아 이곳에 왔다. 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약으로 삼는 버릇을 못 버렸다. 동네 출근길이 이제는 사십 분 걸리는 길이 되었다. 좋은 노래 볼륨 가득 키우고 손가락 까닥까닥 하다보면 잠도 깨고 마음이 설렜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괜찮았다. 그 마음이면 되었다. 설렘을 생각하는 밤. 내 여름은 든든할 거라고. 믿기로 했다. 2015.5.15. 2015. 12. 28.
퇴근길 커피 대신 초코에몽 한 잔 하라는 나횽이 말이 생각나서, 착하게 우유 손에 쥐고 집에 가는 길. 말로만 말고 진짜로 착한 어른이가 되어야 하는데. 접속어 뒤를 잇는 생각들을 꼴깍꼴깍 삼키는 길. 다들 잘 있지. 몸도 마음도 튼튼하지. 그렇지. 2015.5.6. 2015. 12. 28.
옆자리에 아주머니께서 앉으셨다. 제주 볼일 본다고 공항에 발만 딛고 간다고 했다. 창밖에 보이는 비행기 세 대 다 나오게 사진찍어 달라고 하셔서 도와드렸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한참 말씀하셨다. 누군가에겐 설레거나 그립거나 떠나는 마음이 아쉬울 제주도. 하늘은 맑고 비행기는 낮게 날아 다도해가 훤히 보였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오갔다. 섬에 살아도 섬이 그리웠다. 2015.3.24. 2015. 12. 28.
빅이슈에서 우편봉사를 했다. 잡지 포장이 이제는 거뜬해서 내 적성은 우체국일까 별스런 생각을 했다. 정책세미나 듣고 나는 사회복지사일까 교사일까 활동가일까 생각을 했다. 봄인데 낙엽이 자박자박 밟히는 낙산길을 걸었다. 가을 같은 길을 걸으며 어긋난 일들 생각을 했다. 허기져서 들어간 식당은 이름은 국보칼국수인데 조선족 이모가 끓여준 칼국수 먹으며 중국노래를 들었다. 칼국수 씹으며 나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나 했다. 무얼 하면 생각이 잦아들까 싶었는데 틈과 틈에서 생각은 더 쌓인 하루. 오늘도 잘 간다. 2015.3.17. 2015.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