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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쓸모 비행기에 오르고 내렸다. 먹먹해진 마음을 다스려보겠다고 정류장에 앉아 오고 가는 버스를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아픈 일로 급히 오는 날들이 늘겠다는 생각이 서글펐다. 아픈 일들마저도 무게를 재어가며 가는 일을 고민할 어느 날들이 미웠다. 내가 미웠다.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이 섬 안의 섬으로, 섬 밖의 섬으로 산다. 어린 날은 당신이 밖에, 나는 안에 있었고 커서는 자리를 바꾸어 또 그리 살아간다. 두렵기도 했던, 완고했던 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조금 더 든 아버지는 입원한 사이에 화분에 물을 주려고 집에 다녀왔다 했다. 그 말에 눈은 마주하지 못하고 한참 먹먹했다. 아버지는 조금 더 말이 늘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누가 아프고 누가 돌아왔고 누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이듦을, 당신이 어.. 2016. 8. 27.
일상을 마주하기 달음질하지 않고 느슨하게 마주하는 오후 네 시. 시간이 풍경이 음악이 낯설다. 제천에서 여름을 다 살고 온 것 같았는데 선풍기를 끌어안아도 더운 서울의 여름이 아직 남았다. 어딘가 낯설다 낯설다 하며 그늘에 몸 붙이고 걸었다. 점심 때 몇 번씩 넋을 놓고 앉았던 카페는 잘 있었다. 한 달만인데도 이름을 기억하는 마음이 고마워서 자리잡고 앉았다. 친구 둘이 어제 내 이름에 적립을 하고 갔다는데, 사무실 식구일텐데 누굴까 누굴까 생각하는 마음이 간지러웠다. 아기가 옹알이를 하고, 사람들이 스터디를 하고, 데이트를 하고, 찻잔이 달그락거리고, 원두가 갈리고, 웃고, 종알거렸다. 일상의 소리를 곁에서 가만가만 들으며 잠시 넋놓아보는 오후 네 시. 일상 같지 않은 소식을 듣고 멈추었다가 일상이 아닌 일이 어디 있.. 2016. 8. 22.
마음의 반동 바람을 쐬겠다고 일하는 곁에 쫄래쫄래 따라가 빵만 한아름 안고 왔다. 빵집에 같이 가자던 말이 여럿 있었고 말 뒤의 챙김이 나는 고맙다. 혼자 일하는 곁을, 고마운 이들이 말을 건네고 밥을 챙기고 때로는 잠시 머물러 앉기도 하며 채워주는 마음을 안다. 부풀었다 내려앉았다 조용히 숨고를 때에, 나누어먹고 눈웃음하고 어깨도 두드리며 오가는 마음의 반동이 약이 된다. 2016.8.8. 2016. 8. 22.
윤성희, 낮술 그러게요. 사는 게 무서워 비겁하게 도망다녀요. 아빠가 말했다. 그 말에 할머니가 갑자기 아빠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마치 열 살짜리 손자를 때리듯이. 이놈아. 뭐가 무서워. 아빠는 할머니에게 엉덩이를 맞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더 때려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 나이 되면 뭐가 제일 무서운지 알아? 계단이야. 계단. 할머니가 말했다. 그날 아빠의 머릿속에는 하루종일 할머니의 말이 맴돌았다. 나도 언젠가는 계단이 무서운 나이가 될까? 아빠는 밤새 뒤척였다. 2016. 8. 7.
자리 빛나는 글씨가 나오는 기념품 선풍기가 신기해서 한참 만지작거렸다. 사무실을 주로 지키는 나는 신기한 장난감으로 나름대로 요긴하게 쓸 것 같다. 졸릴 때마다 바람 맞아야지. 어제부터 카운트다운이 붙기 시작했고, 공기도 소리도 분주하다. 올해는 외진 자리여서 외롭겠다고 투정을 했는데, 문과 문 사이에 앉아 드나드는 얼굴들을 살피고 눈맞춤하는 자리가 이제는 제법 괜찮다. 사람도 짐도 공기도 바쁘게 지나는 풍경 그 사이에, 잘 머물고 있다. 피터, 폴 앤 매리의 영화는 못 보지만 풀벌레 소리를 얹어 앨범 하나를 오래 듣는다. 작은 고리를 내 시간에 엮어가며, 선선한 여름밤이 또 지난다. 2016.8.3. 제천 2016.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