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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쓸모

by 리을의 방 2016. 8. 27.
비행기에 오르고 내렸다. 먹먹해진 마음을 다스려보겠다고 정류장에 앉아 오고 가는 버스를 한참 쳐다보기만 했다. 아픈 일로 급히 오는 날들이 늘겠다는 생각이 서글펐다. 아픈 일들마저도 무게를 재어가며 가는 일을 고민할 어느 날들이 미웠다. 내가 미웠다.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이 섬 안의 섬으로, 섬 밖의 섬으로 산다. 어린 날은 당신이 밖에, 나는 안에 있었고 커서는 자리를 바꾸어 또 그리 살아간다. 두렵기도 했던, 완고했던 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조금 더 든 아버지는 입원한 사이에 화분에 물을 주려고 집에 다녀왔다 했다. 그 말에 눈은 마주하지 못하고 한참 먹먹했다. 아버지는 조금 더 말이 늘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누가 아프고 누가 돌아왔고 누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이듦을,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나의 쓸모없음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병원 앞 바다에 오도카니 서서 돌고래 등만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나의 섬을 마주하는 시간이 덜 아프기를, 덜 먹먹하기를, 이 순간에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못됐다, 어리다, 나쁘다,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아버지가 당부한 화분에 물을 주고, 방을 닦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고작 그 정도의 쓸모를 하고 섬 밖의 내 자리에 돌아왔다. 퇴원을 앞둔 며칠 새 먼지가 다시 앉을 당신의 집을 생각했다. 고작 그 정도의 생각을 했다.

2016.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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