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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빛나는 글씨가 나오는 기념품 선풍기가 신기해서 한참 만지작거렸다. 사무실을 주로 지키는 나는 신기한 장난감으로 나름대로 요긴하게 쓸 것 같다. 졸릴 때마다 바람 맞아야지. 어제부터 카운트다운이 붙기 시작했고, 공기도 소리도 분주하다. 올해는 외진 자리여서 외롭겠다고 투정을 했는데, 문과 문 사이에 앉아 드나드는 얼굴들을 살피고 눈맞춤하는 자리가 이제는 제법 괜찮다. 사람도 짐도 공기도 바쁘게 지나는 풍경 그 사이에, 잘 머물고 있다. 피터, 폴 앤 매리의 영화는 못 보지만 풀벌레 소리를 얹어 앨범 하나를 오래 듣는다. 작은 고리를 내 시간에 엮어가며, 선선한 여름밤이 또 지난다. 2016.8.3. 제천 2016. 8. 6.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의 시가 기억나 찾아 옮겨 적었다. 시를 읽은 밤, 일을 조금 일찍 마쳤고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고 웃고 노래하고 밤길을 오래 함께 걸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방청소를 하고 창을 활짝 열고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를 한참 들었다. 탓, 낱말에 온기가 돌았다. 밤의 소리와 풀냄새와 이런 저런 풍경과 사람과 마음 같은 것들을 어느 탓으로 여겨보았다. 문득, 이따금, 나는 나의 몫으로 살고 있을까, 내 자리가 어딜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무얼까, 생각이 툭툭 떨어졌다. 생각을 줍고 싶은데 잘근잘근 밟기만 하는 것 같았다. 허공을 둥 헤맬 때, 어느 옛 흔적에 발이 묶일 때,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 내가 힘이 나지 않을 때,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 해가 질 때, 낯선 풍경에 있을 .. 2016. 8. 4.
일기예보 위젯에 그리운 곳 날씨를 띄워놓고 가끔 살핀다. 여기는 이렇고, 거기는 그렇구나, 어느 날씨를 계절을 공기를 사람을. 제주는 내내 비가 없다. 덥고 습한 공기가 훅훅 올라올 그곳의 한여름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프다고 한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한다. 아버지는 늘 그렇지 한다. 나는 식사를 묻는다. 나는 병원에 가셨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나는 매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하는 일이 없다. 나는 매번 울음을 참지만 들키는 것 같다. 아버지는, 힘을 내라고 한다. 어느 단단한 말을 내가 하고 싶은데 속을 꾹꾹 누르고 네, 밖에 하지 못한다. 2016.7.28. 2016. 8. 2.
독서유랑, 이상의 집 공부 말고 이상을 스스로 마주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서촌을 느슨하게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책읽는지하철의 독서유랑단에 참여했다. 7월은 시 유랑. 비가 촉촉한 날, 사람들과 마주앉아 시를 읽었다. 이상이 두 살부터 스무 해 가량 살았다던 집, 이상의 방으로 짐작되는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시를 읽고 나누고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사람들이 모이니 시집 한 권에서도 저마다 고른 시가 같고 또 달랐다. 하나의 시에서도 마음이 닿는 곳이 같고 또 달랐다. 모더니스트, 천재와 같은 수식어로 인해 실은 온전히 마주하지 못했던, 시마다 머물렀을 그의 감정을, 풍경을 생각했다. 꽃나무를 다시 읽었다. 몇 해 전 어느 밤에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갈 수 없는 나무와 달아나는 나의 모습이 서글펐.. 2016. 7. 29.
달 그리고 시 "네게서는 달의 냄새가 난다. 너는 걷고 걷고 걷는다." 황인숙 시인의 '밤길'. 달의 냄새가 난다는 시를 생각했다. 달밤 꿈에 걸은 발자국에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다는 김옥봉의 한시도 생각했다. 가로등이 달 같은 밤. 자박자박 걷다 들어올 걸 그랬다. 글자를 아껴 감정을 담는 시를 닮고 싶은 날이 많았다. 시 같은 글을 동경했고 시 같은 마음을 동경했다. 말을 아껴야 하는 날. 감정을 아껴야 하는 날. 그리고 그러지 말아야 할 어느 날도 생각했다. 헤맸다. 2016. 7. 27.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을지로에서 충무로로 꺾는 길, 시그니처타워 앞에는 뼈만 있는 물고기 동상이 있었다. 그앞을 지날 때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의 가시고기를 생각했다. 가시만 남아 물고기의 입으로 들어가면 몸 밖으로 바로 나오던 둘리 친구들과, 슬픈 눈을 꿈벅이던 물고기가 어른거렸다. "나는 쏟아지고 싶었으나 언 수도처럼 가난했단다" 박연준의 시, 빙하기를 읽었다. 쏟아질 수 없어 가난했는지, 가난해서 쏟아질 수 없었는지 모른다. 결핍이 있어 허기진 것일지, 허기져서 결핍이 있는 것일지 모른다. 결빙이란 어느 때가 있는 것일지, 어느 방법이 있는 것일지 희미했다. 허기의 근원을 몰라 물고기는 슬펐을 것이라, 되도 않는 생각을 했다. 시는 너를 그리워하려는데 나의 한 조각이 스르르 결빙되었다 맺었다. 결.. 2016. 7. 17.
성대신문,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필사의 세계 아주 작게 필사모임을 이어갔다. 대학 신문에서 인터뷰를 했다. 존재가 미미해서 한참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주절주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기자의 촘촘한 글에 작은 이야기가 붙었다. 몇 개의 질문 덕분에 나는 왜 좋아할까, 왜 고민할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자글자글 구르던 생각들을 오래 돌아봤다. 작은 점이라 생각하며 지냈는데, 점을 발견해주는 일이 참 고맙다. 성대신문, 눈이 아닌 손으로 읽는 필사의 세계 http://m.skkuw.com/news/articleView.html?idxno=12583 2016. 7. 15.
상실을 생각했다. 1. 권여선의 소설을 챙기고 나왔다. 첫 문장은 그랬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2. 데몰리션을 보고 왔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을 말하지 않지만 실은 모두 상실이었던 이야기. 상실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을까. 가끔은 피식 웃기도 하며, 덤덤하게 상실을 마주했다. 삶이 무너지는 증상. 그리고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증상을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한다 알고 있었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은,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없는, 상실이란 낱말은, 사람은, 시간은, 그랬다. 덤덤히 마주할 수 있는 간극을 나는 갖고 싶었다. 3. 영화가 끝나고 해설을 더한 의사는 글을 씀으로써 감정을 서사화하는 경험을 말했다. 감정을 종렬로 세.. 2016. 7. 15.
2016.6. 춘천과 서울, 골드스타 G7, 후지 컬러 200 물이 그리워 공지천을 찾았다. 바다 대신 강을, 오리 대신 오리배를, 사람 대신 풍경을. 한 달에 필름 하나, 꼭 그만큼만 스스로 챙기고 살겠다고 걷는다. 사는 일이 어느 날은 멈춘 것도 같았는데,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6.6. 춘천과 서울 골드스타 G7, 후지 컬러 200 춘천 공지천 서촌, 점심 대신 산책. 2016. 7. 9.
2016.5.~6. 춘천과 서울, 골드스타 G7, 아그파 비스타 플러스 400 요즘은 아그파 필름이 좋다. 코닥의 따뜻함과는 질감이 다른, 무심한 따뜻함이 좋다. 2016.5.~6. 춘천과 서울 골드스타 G7, 아그파 비스타 플러스 400 5월, 춘천 김유정역 실레마을 서울, 비단콤마에서 만난 제주의 토마 남산도서관 가는 길 춘천 운교동, 봉의초등학교 2016.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