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의 시가 기억나 찾아 옮겨 적었다. 시를 읽은 밤, 일을 조금 일찍 마쳤고 사람들과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고 웃고 노래하고 밤길을 오래 함께 걸었다. 잠이 오지 않아 방청소를 하고 창을 활짝 열고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를 한참 들었다. 탓, 낱말에 온기가 돌았다. 밤의 소리와 풀냄새와 이런 저런 풍경과 사람과 마음 같은 것들을 어느 탓으로 여겨보았다. 문득, 이따금, 나는 나의 몫으로 살고 있을까, 내 자리가 어딜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나는 무얼까, 생각이 툭툭 떨어졌다. 생각을 줍고 싶은데 잘근잘근 밟기만 하는 것 같았다. 허공을 둥 헤맬 때, 어느 옛 흔적에 발이 묶일 때,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때, 내가 힘이 나지 않을 때,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 해가 질 때, 낯선 풍경에 있을 ..
2016. 8. 4.
상실을 생각했다.
1. 권여선의 소설을 챙기고 나왔다. 첫 문장은 그랬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2. 데몰리션을 보고 왔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을 말하지 않지만 실은 모두 상실이었던 이야기. 상실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을까. 가끔은 피식 웃기도 하며, 덤덤하게 상실을 마주했다. 삶이 무너지는 증상. 그리고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증상을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한다 알고 있었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은,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없는, 상실이란 낱말은, 사람은, 시간은, 그랬다. 덤덤히 마주할 수 있는 간극을 나는 갖고 싶었다. 3. 영화가 끝나고 해설을 더한 의사는 글을 씀으로써 감정을 서사화하는 경험을 말했다. 감정을 종렬로 세..
2016.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