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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37

졸업 계피의 유자차를 사랑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의 앨범은 2집을 가장 아낀다. 밴드란 이름으로, 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노래들이 좋다. 함께하는 일. 나는 무엇으로 해갈할 수 있을까. 그리운 일들을 생각했고, 오랜만에 브콜의 졸업을 듣는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2016.1.21. 2016. 1. 22.
서촌 일주일 새, 사무실 근처 두 가게가 문을 닫았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홍성한우암소만이 문을 닫았다. 1월 첫 주에는 사직분식이 문을 닫았다. 이름없는 두부찌개집인 줄 알았는데 철거현장에서야 해묵은 사직분식의 간판을 보았다. 몇 달 동안 한우고기집 벽에는 노랗고 빨간 현수막이 오래 붐볐고, 어느날 벽이 허전해졌고, 며칠 뒤 폐점을 알리는 작은 종이가 창에 붙었다. 쫓아내고, 쫓겨난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혹은 보전이라는 이유로, 약자인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아홉 달을 오가며 정들어가는 서촌. 아직 동네를 마음껏 아끼지도 못했는데, 쫓아내고 쫓겨나는 풍경들이, 사라지는 풍경들이 서글프다. "서촌라이프 : 도서관이 사라진다_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 을 읽고.사직분식은 소공동으로 옮겼다. 뜨끈하고.. 2016. 1. 7.
시와 하우스 콘서트 '겨울을 건너' @스푼하우스 시와의 하우스 콘서트 '겨울을 건너', 스푼하우스에서. 오래 전 대학생 때 '길상사에서'를 처음 들었다. 쓸쓸하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위태위태했던 내 마음이 스며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오래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한참 지난 어느날 온스테이지 영상에서 다시 들었다. 쓸쓸했는데 또 은근한 온기가 그날은 참 좋았다. 한강의 희랍어시간을 읽으며 적어두었던 문장에서 시와 목소리가 생각났다. 나무 질감이 있는 목소리를 되감으며 오래 들었던 밤. 그렇게 시와가 좋아졌다. 겨울 오후, 가장 따뜻한 시간 세 시, 열다섯을 위한 공연. 가장 따뜻한 시간에서 겨울을 건넌다는 말이 마음에 잔상처럼 남았다. 평일이었고 일이 밀린 12월이어서 하루를 꼬박 고민하다가, 나는 꼭 연차를 써야겠다고 이상한 굳은 다짐을 하.. 2016. 1. 5.
필사 책을 베껴쓰는 일을 좋아했다. 마음에 닿는 문장을 꾹꾹 눌러쓰며 베끼다 보면 그 문장들이 내것이 된 것 같았다. 문장을 오래 매만질 수 있었다. 내가 문장이 된 것 같았고, 나도 그런 문장을 만들고 싶었다.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오후면 허정허정 걷다가 봄이나 콩삼이나 왓집에 가서 좋아하는 커피에, 좋아하는 문장에, 한 주를 맺고 한 주를 충전했다. 한 주의 작은 외출이 꽤 힘이 됐다. 지난 겨울부터 일 년을 손을 놓았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에 틈이 잘 생기질 않았다. 쉬는 날이면 겨울잠 자듯 긴 잠을 잤다. 철이른 겨울잠 속에서 나는 더 조용해졌고 말도 생각도 글도 잃은 것 같았다.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책읽는지하철의 홍대필사모임에 들었다. 필사는 베껴쓰기와 같은 말인데도 어.. 2016. 1. 5.
할머니 꿈 가디건을 하도 입어서 프랑스 할머니, 영국 할머니 별명이 붙었다. 흔들의자에서 뜨개질하는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에 울상을 지었지만 실은 뜨개질도 좋고 바느질도 좋고 태생이 할머니스럽기도 해서 별명들이 괜찮기도 했다. 생산적인 여가생활을 하면 퇴근 후 풍경이 달라질 것도 같아 지난 봄에 자수책을 샀다. 버릇처럼 일속에 일상을 살았고, 손을 움직여야 하는데 그림책 보듯 자수책만 한 장 한 장 읽었다. 언제나 느렸듯 두 계절을 묵히고서야 바늘을 쥐니 프랑스 자수는커녕 이주일 내내 실만 엉켰다. 프랑스 할머니는 아무래도 글렀네 싶었는데 진득하게 잡으니 오리 한 마리가 나왔다. 급하지 않게. 진득하게. 그럼 되었다. 진득한 마음을 중심으로 삼고 싶었다. 마음의 풀기가 끈적이지 않아 내가 싫었고, 그 마음이 부끄러워.. 2016.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