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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37

풍경 보송보송한 빨래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들으며 밍기적거리는 일도 좋았다. 비가 촉촉한 밤. 기어이 빨래를 돌리고 지난 여름 사진 뒤적거리며 우웅우웅 돌아가는 소리에 그냥 마음이 괜찮다. 이날은 팔월, 전주였고 출장 중이었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르고 또 닮은 일들을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 모였고 나는 마음이 들떠서 골목길도, 대문도, 빨래도, 소소한 풍경들이 처음 보듯, 마냥 좋았다. 다시 맞은 여름. 여름의 풍경은 같은데 내 풍경은 달라졌다. 몸이 늘어지는 것 같아서 가뿐해지겠다고 머리를 잘랐다. 꽃핀 꽂으면 좋은 사람 만난다고 선물해준 아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예뻐서 묶을 만큼의 머리는 남겨뒀다. 다른 무게일텐데도 가뿐한 머리에 마음이 보송보송해졌다. 똑 떨어진 필름도 이.. 2015. 12. 28.
한 달 두 주째, 퇴근길 한 달 두 주를 채웠다. 길도 헤매고 일도 헤매며 살았다. 퇴근길에 깜박 정신을 놓으면 을지로입구와 을지로3가와 종로3가의 단어 사이에서 여전히 헤맸다. 사무실에서 씨네큐브까지 타박타박 걷기 좋았다. 영화 보고 나온 길인데도 하늘이 환했다. 여름이다. 낯설 여름. 설렐 여름. 헤매는 많은 순간들을, 낯설기보다 설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선택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동생과 통화하며 어른의 마음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 다독였고, 조금 전 보고 나온 위아영에서는 젊음과 나이듦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나왔다. 나이답게 사는 것과 나이와 다르게 사는 것. 나도 흔들리면서 어른인 체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김밥집 아주머니께서 국민의 비도덕성을 언급하며 자꾸 말을 걸고 나는 할말이 없는데, 엉뚱하게도 아직도 .. 2015. 12. 28.
아침 사무실 대문 덮은 나무에 제비도 살고 참새도 살고. 컴퓨터 만지다 인기척에 돌아보면 옆에서 새가 총총총 뛰고. 옆집 백구와 인사하며 출근하고 퇴근하고. 소소한 일상을 겹겹이 포개며 하루가 가고, 또 오고. 2015.5.25. 2015. 12. 28.
실픈 밤, 그리운 밤 실프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슬프다. 정확히는, 실프다는 말에 맞장구칠 사람이 없어 허전한 게 맞겠다. 아 실프다. 무심코 뱉었다 다시 삼키는 말. 이상하게 그리운 말. 오늘은 그랬다. 하염없이 실퍼져서 일은 접고 나왔다. 영화 하나 보고 버스 기다리는 일도 실퍼져서 조금 걸었다. 오늘 서울의 밤은 소란스럽다. 영화 보고 탑동까지 자박자박 걸었던 내 잔잔한 밤은 덕수궁길로 대신했다. 길이 짧아 허전했다. 걷고 걷고 걸으면 바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미소 지으라고 기은이가 보내준 바다 사진 보며 마음을 채우는 밤. 내 잔잔한 밤. 2015.5.17. 2015. 12. 28.
그 마음이면 동네 학교 걸어다니던 중학생 때, 버스 타고 학교 다니고 싶다는 낭만이 있었다. 고등학교, 한 시간 반 걸리는 통학길은 낭만은커녕 지옥이었지만 그때부터 노래들이 내 좋은 친구가 되고 약이 되고 밥이 되고, 그랬다. 음악이 좋고 영화가 좋아 이곳에 왔다. 약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약으로 삼는 버릇을 못 버렸다. 동네 출근길이 이제는 사십 분 걸리는 길이 되었다. 좋은 노래 볼륨 가득 키우고 손가락 까닥까닥 하다보면 잠도 깨고 마음이 설렜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괜찮았다. 그 마음이면 되었다. 설렘을 생각하는 밤. 내 여름은 든든할 거라고. 믿기로 했다. 2015.5.15. 2015.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