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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79

동화 같다지만 어느 하루는 디즈니처럼 명랑해도 좋잖아요 아리스토캣(The Aristocats) 1970년에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은 고양이 가족의 모험영화이자 음악을 즐기는 고양이들의 뮤지컬입니다. 파리의 대저택에서 귀부인의 사랑을 담뿍 받는 고양이 가족이 있습니다. 우아한 엄마 고양이 더치스는, 개구진 아기 고양이 마리, 툴루즈, 베를리오즈가 품위 있는 고양이로 자라나도록 가르치며 보살핍니다. 툴루즈는 쫀득한 발바닥으로 그림을 그리고, 베를리오즈는 통통 피아노를 치고, 반주에 맞추어 엄마 더치스와 마리는 노래를 하며, 예쁘고 따뜻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노래 : Scales&Arpeggios] https://youtu.be/txx9D-8ubdg 어느날 귀부인은 유언장을 씁니다. 재산의 첫 번째 상속자는 고양이 가족이지만, 고양이 가족이 세상을.. 2018. 6. 29.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찬비가 후두둑 후두둑 굵다. 고양이 밥을 챙기러 잠깐 사무실에 왔다. 금요일에 그릇 가득 사료를 붓고 통조림도 열어주고 퇴근했는데 하루를 건너뛰고 오니 설거지한 것처럼 그릇이 깨끗했다. 비가 오니 어제 오지 못한 일이 더 미안해졌다. 기다리는 친구들은 오지 않고 비는 더 후두둑 내린다. 고양아, 고양아. 어디서 헤매니. 밥은 먹었니. 비는 잘 피하니. 지하철역 앞에서 빗길에 비둘기 둘이 무슨 공을 차며 노나 했다. 가까이 보니 삼각김밥을 둘이서 콕콕 쪼아 먹고 있었다. 버려진 것일지 누가 주었을지 제 몸의 반만 한 밥을 필사적으로 먹었다. 거리에서, 도시에서, 길의 동물들이 사는 방법. 아니 살아남는 방법. 사무실을 찾는 길고양이들이 짧게나마 다가오는 것도 곁을 내어주고 밥을 얻으.. 2016. 10. 23.
시간 잘 다독여지지 않는 날들이었다. 당신과, 당신도 그러할 것임을 안다. 속엣말이 따끔거렸다. 말들이 형태를 갖추지 못해 꺼낼 수 없었다. 말로도 침묵으로도 아플 것이었고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어서 침묵했다. 누구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모두 아팠다. 원망하지 않았고 바라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지 마라, 문장을 계속 받았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내 마음이 정말 그랬나 싶었다. 미워했던가. 무엇을 바랐던가.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다 생각했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침묵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나 따위가 뭐라고. 무슨 자격이 있다고. 서로를 겨냥하는 말들이 사람 사이를 오갔다. 일곱 살의 나와 열 살의 나와 열여덟 살의 내가 뾰족이 찔렀다. 서른의 날들은 지워지고 위축된 어린 애가 되었다. 시.. 2016. 10. 21.
고양아, 고양아. 길고양이 식구들을 만난 지 한 달이 찬다. 세 주가 지나는 사이 아기들이 떠나 엄마 혼자 남았다. 한 아기는 별이 되었고 두 아기는 어디서 꼭 살고 있길 하며 마음으로 염려를 누른다. 아기들이 있을 땐 꼭 곁에서 지켜보고 밥도 항상 아기들이 우선이었던 모성이, 혼자가 되니 다시 어린 고양이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기 하나가 축 늘어졌을 때 야옹 야옹 가냘피 울던 엄마는, 이제 밥을 잘 먹고 가끔은 벌레를 잡고 놀다 혼자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현관이 열렸을 땐 사무실 안까지 들어와 쓱 출근을 하고 가기도 한다. 다행이다. 엄마 고양이 너는 잘 먹고 털도 보드라워지고 있어 참 다행이라고, 밥 먹는 굽은 등을 보며 그저 잘 먹는 모습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 식구일 때는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섣불리 .. 2016. 10. 13.
관찰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며 고양이 밥을 두 그릇 챙기고 나왔는데 낮에 사무실에 들른 국장님이 밥이 다 떨어져서 사다 주었다 했다. 갈수록 먹성이 좋다. 한동안은 서서 밥을 먹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세우며 긴장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살이 오른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프린터가 돌아가든 새소리로 장난을 치든 돌아보지도 않고 오래 앉아 오도독거린다. 창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사무실 풍경을 가만히 보기도 한다. 잠시나마 길고양이들에게 그리고 내게도 마음을 놓는 자리가 되어 고맙다. 요즘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친구들이다. 밤에는 고양이 자수를 놓고, 얼마 전 '고양이 춤' 영화를 찾아 봤다. 영화를 만든 시인의 이야기를 더 오래 듣고 싶어 '나쁜 고양이는 없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책 두 권을 구했다. .. 2016.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