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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시와 하우스 콘서트 '겨울을 건너' @스푼하우스

by 리을의 방 2016. 1. 5.

시와의 하우스 콘서트 '겨울을 건너', 스푼하우스에서.

 

오래 전 대학생 때 '길상사에서'를 처음 들었다. 쓸쓸하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위태위태했던 내 마음이 스며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오래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한참 지난 어느날 온스테이지 영상에서 다시 들었다. 쓸쓸했는데 또 은근한 온기가 그날은 참 좋았다. 한강의 희랍어시간을 읽으며 적어두었던 문장에서 시와 목소리가 생각났다. 나무 질감이 있는 목소리를 되감으며 오래 들었던 밤. 그렇게 시와가 좋아졌다.


겨울 오후, 가장 따뜻한 시간 세 시, 열다섯을 위한 공연. 가장 따뜻한 시간에서 겨울을 건넌다는 말이 마음에 잔상처럼 남았다. 평일이었고 일이 밀린 12월이어서 하루를 꼬박 고민하다가, 나는 꼭 연차를 써야겠다고 이상한 굳은 다짐을 하며 공연을 신청했다. 여러 날들 중에도, '아주 작게만 보일지라도' 이 말이 좋아 고른 목요일 오후 세 시를 기다리며 일주일 밤을 시와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침대 위에 엎드리면 창이 있는 벽에 닿지 않아도 몸이 서늘했다. 전기장판 속으로 더 웅크러들었다. 서늘하고 따뜻한 기운. 서늘하고 따뜻한 노래. 시와의 노래가 그랬다. 그 밤들의, 그 노래들의 균형이 나는 좋았다.

오후 세 시, 볕이 내리는 당인동의 작고 예쁜 집. 집보다 더 집 같은 스푼하우스에서 시와의 노래를 들었다. 제주의 어느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왈칵 허물어질 것 같은 날들이었는데 옆에는 제주에서 온 분이 앉았고, 시와는 낭만감귤로 새벽부터 끓인 귤피차를 따라주었다. 나는 마음이 달뜨고 시큰거려서 제주의 날씨는 어떤지, 비가 많이 오지는 않는지, 귤껍질은 어떻게 말렸는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시시한 말을 한참 걸고 싶었다.


어린 날. 여린 날. 아린 날. 획을 바꾸어도 부족했던 날. 존재가 점이 되었으면, 지워지지 말았으면, 이중적인 생각들을 쥐지도 놓지도 못했던 날. 이 마음은 겨울이었을까. 안으로 파고들었던 지난날과 멀어지지 않아서 생각이 더 굽는 계절. 떠나와서도 여전히 헤매는 나는, 여전히 겨울일까.

겨울을 건너는 방법은 그랬다. 서두르지 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견디다 보면, 내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고. 겨울을 건널 수 있다고. 큰언니처럼 다정한 시와의 이야기에 조금은 먹먹했다. 귤껍질을 잘 말리고 새벽부터 오래 끓여 보온병에 담아오는 마음이, 병이 새어 공책이 노래져도 피식 웃었을 마음이, 예쁘고 따뜻했다. 고마웠다.

시와의 노랫말을 적어보는 밤. '다행히 어떤 계절이든 지나간단다'.
이번 주 공연이 다시 시작되기 전에, 고맙다고 말하고 작은 응원을 더하고 싶었다. 그날 쑥스러워 못한 인사 대신, 결국은 일기.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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