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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2010.1.7.

by 리을의 방 2015. 12. 22.
노래를 들으려고 자주 가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서 하이쿠를 읽었다.
눈사람에 대해 나눈 말
눈사람과 함께
사라지네
- 시키

 

고즈넉히 시린 기운에 마음을 비워내야 할 12월은 멍하니 보내버리고, 새 다짐으로 마음을 채워야 할 이 달에, 지난 해 내 모습을 되짚어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있다. 한 아이와 이야기하다가, 지난날을 돌아보는 건 반성이면 족하지 후회까지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멋진 척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지난날 움츠러들었다고 앞날까지 움츠러들지 않아도 되는데, 젊은이다운 패기 없이, 패기까진 아니더라도 싱그러움마저 잃은 채, 난 너무 자신을 믿지 못했다.


지난날을 보내며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내가 지닌 힘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 내가 어울리는 자리에 있는 것인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더 조심스러워지는 바람에 나는 더 머뭇거리면서 더 느릿느릿 움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더 힘을 내보려고 한다. 힘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만큼 이 자리에서 느낀 게 참 많았다. 의도친 않았지만 오만했던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고운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보다 더 고운 선생님들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해를 넘기면서 나 금방 늙어버리겠구나 하고 갑자기 상실감이 확 스쳤다. 이것 역시 오만했다. 불안해서 그랬지 않았을까. 위태위태하게 스물을 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루이제 린저는 젊은이들은 털 뽑힌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호랑이란 동물은 내 품성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럼 내 젊음은 무얼까 싶어지지만 위태로웠던 스물 초반을 잘 넘긴 만큼, 남은 스물도 잘 버텨보겠다고, 그 정도 다짐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지난날, 생각만 너무 많았다면, 올해는 좀더 많이 움직이자고, 이 다짐 하나만큼은 잘 지킬 수 있기를.
선생님을 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모든 일에 열의가 너무 없거나, 아니면 중요하지 않은 한 가지에만 너무 몰입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고. 그래서 네가 아이들에게 열의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두 해 전, 선생님은 자신이 어느 범위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말 힘이 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두 해를 보내면서 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너무 한계만 느껴버린 게 문제였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열의를 화두로 삼아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나를, 여전히 지난 상처에 매여있는 나를, 스스로 신뢰할 수 없었다. 내게 열의가 없다면 아이들에게도 열의를 찾아줄 수 없겠지. 나부터, 어떤 열의를 품어야 할까.
힘든 일이 있었다. 한때 원망스런 일기를 참 많이도 썼었다. 그렇게 풀어놓기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아서, 적어도 엉뚱한 곳으로 분풀이를 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렇게 되기도 했다. 그때였더라면 나는 참 오래 일기를 붙들고 있었을 텐데, 일기를 쓰고 싶지가 않았다. 쓴다고, 뭐가 달라지지. 허무감에 맥이 풀렸다. 그렇게 마음만 어쩌지도 못하고 오래 뒤척이기만 했다. 그리고 조금 전 이상문학상 기사를 읽었다. 당선자도 좋아하는 소설가였고, 우수작에도 참 좋아하는 소설가들의 작품이 실려있어서 무척이나 흐뭇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많이 읽기만 하지 뱉아보지는 않았다. 내게 정말 열의가 있다면, 우습기는 해도 질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스쳤다.
어제 오늘만 해도, 나는 마음을 어떻게든 추스르려는 열의도 없었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글을 향한 열의도 부족했다. 아이들의 열의도 찾아야 하지만, 우선은 내 열의부터 되찾아야겠지.


호랑이같지는 않아도, 나다운 열의를 찾아보려고. 다르다고 해서 부족한 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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