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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2010.3.26. 바오밥나무

by 리을의 방 2015. 12. 22.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나무들이 사람처럼 자유롭게 걸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나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조물주가 멈추라 하면 그 자리에 멈추어야 했는데, 요 바오밥나무 녀석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니며 그렇게도 애를 먹였더랬다. 화가 난 조물주는 바오밥나무를 거꾸로 땅에 메다꽂아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바오밥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솟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지. 이것은 저 먼 대륙 아프리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ㅡ. 한 번씩 이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바오밥나무가 촐싹맞게 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하면 피식, 피식, 웃음이 나서. 아, 바오밥나무스런 객기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싶어져서. 

며칠 전 '두 친구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어머니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있는 소녀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심한 적대심을 품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 작가는 끝을 어떻게 맺을까 궁금했다. 유디트가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여서, 열린 결말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 조금의 실마리라도 얻을 수 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커 버렸다. 이게 끝이라고, 책장만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이 휑해졌다. 마음이 욱신거리며 아렸던 이야기였다. 지난 시간의 파편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마음의 앙금들. 가라앉지도 않고 정화되지도 않고, 그것은, 부유할 도리밖에 없는 걸까. 

학원도 다니고 우리에게도 오는 한 아이가 모의고사를 망쳤다며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의 현재 수학 성적으로 미루어볼 때 수능에서 받게 될 표준점수와 원점수, 등급의 예상치가 분석되어 있었다. 자극은 되겠다 싶었으나, 또한 잔인하다 싶었다. 이 아이, 아직 겨우 열다섯인데, 열아홉의 미래를 두려워하며 준비하고 대처하는 게 맞는 걸까. 서울대를 가고 싶다면 초등학교 때 이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들 하지. 그건 잘 설계된 청사진일지, 냉정한 현실일지 혼란스러웠다. 

난 너무 순하게 살았다, 겉으로는 어찌됐든.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누르고 구겨넣으며 살아왔다. 드러난 행동대로 마음이 꼭 그러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게 맞겠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지, 내가 해 왔던 방식을 아이에게 조언하거나 제시하거나 때론 강요하거나, 그러고 있는 내게 흠칫 놀랐다. 사실 이번만 놀란 게 아니었다. 비슷한 연유에서 하고 있는 여러 고민들이 지속된지 오래인데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착오만 계속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고분고분히 서 있던 나무는 바오밥나무를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난, 잠시라도 바오밥나무가 되고 싶었다. 내가 내린 뿌리가, 움직이기에 너무 깊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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