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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7. 나는 강한 척 시늉만 했나 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수시로 무너지면서, 나도 상당히 심약한 사람이구나 싶어졌다. 프리덤 라이터스 다이어리의 에린 그루웰, 일 년간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교사가 되어 주었다. 네가 내 얼굴에 대고 엿이나 먹으라고 꺼지라고 하기 전까지는 네 곁에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외면하던 아이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그러나 후기에서 그녀는 학교를 떠나 있었다. 대학원 아니, 연구소였나 학교를 떠나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난 그 부분에서 맥이 풀렸다. 학교에 계속 있어주었으면 했다. 동료 교사들과 싸우고, 편견에 맞서주길 바랐다. 또다른 아이들을 계속 지켜주었으면 했다. 자유의 작가들이, 2대, 3대, 무수히 배출되기를 바랐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난 참.. 2015. 12. 23.
2011.10.19. 1. 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가 아프진 않니 괜찮니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런 꿈을 꾸는 내가 속상했다. 2. 가을 모기가 극성이다. 동네에는 모기차가 돌아다니고, 집에서 사무실에서 모기와 싸우다 지쳐서 모기향을 다시 사 왔다. 힘이 없어 툭툭 떨어지는 마른 모기가 가엾다 싶으면서도, 손가락에 발등에 종아리에 발진이 올라와서 귀에서 조금만 앵앵거려도 신경이 곤두선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눈으로 좇느라 도통 집중을 못 한다. 모기 만을 탓할까. 내가 부쩍 예민해졌다. 귓바퀴가 콕콕 쑤신다. 여러 일들을,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면서 괜히 모기 탓으로 돌린다. 봉사를 시작했고, 일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여가와 노동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었다. 비영리의 틀에서.. 2015. 12. 23.
2011.10.16. 퇴근하고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니 새벽 두 시. 졸리면 낮에 좀 졸지 마음이 드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지난 한 주는 안팎으로 게으름만 잔뜩 부렸다. 밀린 빨래나 난장판이 된 집이 그렇고, 사무실 일도 밍기적거렸다. 한 주의 여파에 나는 또 곧 허덕이겠지. 밀린 일들이 좀 겁이 나서 일단은 빨래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덜컹덜컹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아이들도 다 보내고 정리를 하는데 건물 입구에 불량해 보이는 아이들을 조심하고 무시하라는 아이의 문자가 왔다. 창밖으로 보니 어린 친구들이 웅성거리며 한 무더기 모여 있었다.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위협을 느끼는 기준은 무얼까 궁금해지면서도, 어린 동생 보호하듯이 걱정해 주는 고쓰.. 2015. 12. 23.
2011.8.6. 2박 3일의 하이킹을 마치고, 얼마만인지 모를 간만의 프라이데이 나잇, 이었으나. 자려고 누운 오후부터 핸드폰은 불이 나고, 결국 잠은 포기하고 빨래도 하고 병원도 갔다오고 시청도 한 바퀴 돌고 장도 보고. 캠프 마치고 이틀 내내 기절해 있으려고 했더니 오늘도 아침부터 급한 일이 생겨서 비몽사몽인 채로 그렇게 이틀이 지나간다. 밀린 집안일이나 해야지 하고 이불도 돌렸는데 빨래 널 힘도 안 난다. 아이들과 함께하다보니, 없는 체력도 쥐어짜내야 하고(생각보다 체력이 괜찮았던 걸지도 모르고), 장난처럼 말을 통통 받아치는 여유도 생긴다. 힘이 죽죽 빠져도 웃을 힘은 난다. 때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래야 하는 상황이 내 발목을 잡지만, 이제는 일이 아니라 삶이 되어버린 만남들, 사람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 2015. 12. 23.
2011.7.26. 근무 마치고 집에 가서 일하려고 서류에 참고자료에 노트북 바리바리 싸들고 갔는데, 집에서 노트북을 꺼내니 전선이 없다. 배터리 잔여시간 38분. 헛. 맙소사. 결국은 집에서 좀 쉬다가 사무실에 나와버렸다. 두뇌가 포화상태인 것 같다. 일요일에는 집 열쇠가 없어서 밤 열 시 반에 열쇠가게에 전화했다. 열쇠가게 통화 안 되면 119 불러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했었다. ..... 아이들 책 사줘야 하는데 그것도 깜박하고, 중간보고서 제출일자도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기한을 넘겨버린. 결국 그 일로 이 새벽에 사무실이다. 난 왜 여기 보고는 매번 밤새서 정리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인연도 참. 이라기엔, 내가 제때 못했지. 집중력의 문제, 아님 정말 두뇌 저장영역의 문제? 게을러서? 뭐지 뭐지... 2015. 12. 23.
2010.5.17.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는데, 수학여행단이려나 아이들이 우와- 하고 정말 큰 소리로 떼지어 환호했다. 제주에 거의 다 왔을 때 비행기가 덜컥 겁이 날 만큼 무섭게 흔들렸다. 나는 심하게 겁먹어서 앞좌석 시트만 꼭 붙들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자이로드롭 같다고, 재밌다고, 폴란드여객기 사건을 얘기하며 죽는 거 아니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댔다. 아이들의 태연함답게 비행기는 무사히 잘 도착했고, 비행기와 공항을 연결하는 버스 안에서 에너지 가득한 남자아이들은 의성어와 몸짓만으로 외국인과 즐겁게 대화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참 예쁘고 또 부러웠다. 나는 열 몇 살 무렵의 재기발랄함이 없었고, 스물 몇 무렵의 싱그러움도, 열기도 없는데. 그 무렵 내가 마음을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달라지는 무언가가 있었을까.. 2015. 12. 22.
2010.5.6.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 ...... 마음을 둘 곳이 없구나. 자꾸 차오르는 걸 꾹 누르고 있는 마음을, 이해하기 싫어서. 인정하기 싫어서. 어차피 가식적으로 숨기는, 진실되지 않은 마음을. 이왕 못된 것, 한 번쯤은 날것으로 내놓아도 되지 않겠냐고, 대상도 없이 막연히 원망하고 싶은 것을. 결국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 마음을 둘 곳이, 이렇게나 없구나. 종일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러다 두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한 아이에게, 이 아이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혼을, 아니 화를 내고 있었다. 싫어하는 목소리가 내게서 나왔다. 멈칫했다. 결국, 내던 화를 주워담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매선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울컥 치밀어올랐다. 또 다른 아.. 2015. 12. 22.
2010.4.8. 구전 동화에 관한 부분을 읽다가 마음에 남은 부분. 권선징악, 선이 이기고 악은 벌받으나, 악을 악으로써 징벌하다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악을 계몽하기 위하여, 주체자는 선이라 하더라도 왜 그 방법은 악할 수밖에 없었을까. 조금 전 제2의 김예슬 대자보를 두고, 총학 선거를 대비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고려대 학생과, 서울대 학생의 대자보. 그리고 삭발하는 여러 학생들. 나는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숱하게 스쳤는데 말이다. 세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공허해졌다. 하나하나, 여러 사연과, 여러 개성과, 여러 품성으로 그렇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고, 또 내 지난 시간을 생각했다. 가장자리에 있을지도 모를 아이와 손잡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이곳에서마저도 또 가장자리가 생겨버.. 2015. 12. 22.
2010.3.26. 바오밥나무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나무들이 사람처럼 자유롭게 걸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나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조물주가 멈추라 하면 그 자리에 멈추어야 했는데, 요 바오밥나무 녀석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니며 그렇게도 애를 먹였더랬다. 화가 난 조물주는 바오밥나무를 거꾸로 땅에 메다꽂아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바오밥나무는 뿌리가 하늘로 솟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지. 이것은 저 먼 대륙 아프리카에서 전해오는 이야기ㅡ. 한 번씩 이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바오밥나무가 촐싹맞게 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하면 피식, 피식, 웃음이 나서. 아, 바오밥나무스런 객기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싶어져서. 며칠 전 '두 친구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어머니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있는 소녀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해.. 2015. 12. 22.
2010.3.20. 괜한 걱정 내가 하는 일에 과도하게 부담을 느끼긴 했나 보다.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꽤 지났다. 꿈에서마저도 난 아이들과 아웅다웅거리고 있었다. 해결하지 못한 일이 꿈에서까지 이어지거나, 올 수 없는 아이가 오거나,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지거나, 기억나지 않는 여러 일들까지. 그렇게 꿈에서 투닥거리다가 몽롱한 상태로 출근하고, 오후가 되면 이번에는 진짜로 아웅다웅거리는 시간들이 흐르고, 그러다 다시 꿈.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지만 그래도 꿈은 지나치잖아 싶어질 때. 이따금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해질 때. 나는 앞으로도 오래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는 미안함이 마음에 겹겹이 포개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고가는 무수한 마음들을 받아내고 견.. 201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