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125

2008.4.29.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는데, 아이들이 꿈이 뭐냐고 묻는데, 불안정한 마음을 품고 얼굴은 위장하고 휘청거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꼿꼿하게 다리에 힘주고 서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생님 소리를 듣는다는 자체가 정말 많이 미안했다. 요즘 마음은 그렇다.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께도, 친구들에게도, 동생에게도, 고모에게도, 미안하기만 하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묵직하게 가라앉아버리는 일. 믿음을 조각조각 갉아먹는 일. 그런 게, 다 미안했다. 죄송했다. 2015. 12. 22.
2008.4.2. 과제들은 꽤 쌓였는데 영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마음만 싱숭생숭하다. 봄, 봄이라서 그런가. 개소식 사진에 나온 아이들 여럿의 얼굴을 계속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예쁘게 멋지게 잘 사는 모습까진 아니더라도, 청자에서 오래 지내고 담당하는 학년이 늘게 되면서 적어도 요녀석들 대학 가는 건 봐야 하는데, 싶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아이들과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시간도 헤아리게 되고. 선생님은 너희들 덕분에 웃을 일도 많아졌고 말도 많이 늘었고 표정도 밝아졌고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되고 생각도 많아지고 보다 너그러워지고, 그렇게 얻는 게 참 많아서 언제나 참 고마워. 그리고 한편으로는 너희들에게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없어서, 이를테면.. 2015. 12. 22.
2008.3.7. 가게에서 용빈이가 준 녹차 티백을 우려 마셨다. 엄밀히 말하자면 공부방에 비치된 걸 용빈이 녀석이 만지작 만지작 장난치다가 준 것이지만, 알게모르게 하나씩 챙겨주는 게 눈에 보여 참 고맙다. 이렇게 아이들이 소소한 것 하나를 쌤이라고 배려해 주고, 환한 얼굴로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 주고, 아이들의 눈에서 이건 정말 진심이구나 확신이 드는 마음을 읽을 때 가슴이 벅차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의 마음 앞에서 난 여전히 설렐 것 같다. 깜박 잠이 들어서 택시를 타서 일하러 오고, 쌍으로 코피가 나고, 손톱 틈새에서 자꾸 피가 나고, 속이 쓰려서 위생천을 마셨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세 시간만 자도 행복할 것 같다. 이번 주는 수면 시간이 평균 두 시간도 안 된다. 과부하 신호가 하나 둘 나타난다. 매우.. 2015. 12. 22.
2008.2.13. 일, 월, 화, 수, 이렇게까지 목이 쉬어서 안 풀리긴 처음이다. 목소리가 안 나오고 잇몸부터 발바닥까지 온몸이 욱신거리다가 드디어 감기가 코로 올라왔다. 이렇게 온몸을 한 바퀴 돌고나면 쑥 빠져나가겠지, 그 때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월, 화 내내 몇 시간씩 수업하고 편의점에선 손님 맞을 때마다 인사하고 계산하면서 말을 잘 때 빼고 계속 하다 보니 목감기가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목소리 덕분에 재미없는 내가 아이들을 웃겼다. 그래서 목이 아파도 나는 기분이 좋다. 다시 이사를 한다. 십 년 이상을 한곳에 붙박이로 살다가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뒤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옮겨 다닌 걸 생각하면 혹시나 나한테도 역마살이라든가 뭐 그런 거 비스무리한 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 2015. 12. 22.
2008.1.11. 어제는 오랜만에 공부방 선생님들과 작은 술자리를 가졌다. 작은 자리여서 마음이 편안했다. 억지 유희도 없고, 그저, 아이들 얘기, 삶 얘기, 경림 선생님께서 전망하시는 내 미래, 다른 선생님들의 삶, 그 가운데 반짝반짝 빛나는 웃음들. 선생님들과 얘기하다 보면, 내 모습이 선생님들의 말에, 눈에 비춰진다.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타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5년, 10년 후의 내 모습, 그보다도, 한 해가 지나서 내년 이맘 때 쯤이면 내가 어떤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참 궁금하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만 같다. 객관적으로 보면 잘한 선택은 아니다. 아직도 마음이 순간순간 크게 흔들리고 자꾸 옹졸해지니까. 나는 이런 선택을 하겠다.. 201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