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학실습 첫째 날
자신감은 자꾸 바닥을 치고, 머리도 옷도 내가 있는 이 자리도 너무 어색하고, 많은 사람들 틈속에서 너무 피곤하고, 집일은 자꾸 마음에 걸리고, 긴장해서 속은 쓰리고, 모든 게 다 신경쓰인다. 불안불안한 하루.
견학실습 둘째 날
청자 아이들에게 하던 대로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움찔. 이곳 학생들에게 나는 지나가는 바람일 뿐일텐데. 지도 선생님의 수업은 참 좋았다. 수업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 하는 말들과 수업을 이끌어가는 방식이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것 같아서 자신감이 약간 생겼다. 과제는 자꾸 밀리고, 몸은 피곤하고, 아버지와 통화하고 마음은 묵직하고, 진로 고민 역시 해결하지 못했다. 기대감과 호기심에 부풀어 가슴이 두근거려도 모자랄 판인데 나는 참, 지금 뭐하고 있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내 전공도 살리고 싶다. 학교란 조직은 내게 너무 크다. 시험을 위한 단편적인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없다. 불안감을 드러내면 불안정한 선택이 더 많이 공격받을까봐 꼭꼭 숨긴다. 현명한 이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으면서도 조리있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게 닥친 현실은 무겁고 어둡다. 나는 미련하다. 내 마음은 어리석다. 불안한 마음을 품고 얼굴을 위장한 채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이, 정말, 아주 많이 부끄럽기만 하다.
견학실습 셋째 날
첫날이었던 것 같다. 문제 학생의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고, 아니면 문제 이모나 문제 삼촌이 꼭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은 모든 교생이 와 하고 웃었다. 웃지 못했다. 웃으면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내모는 건 어른들이다. 상처 주는 부모님, 상처 주는 선생님,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에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어른들이라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른도 어른으로서의 삶이 처음이기에 완전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어른이 어른에게 받은 상처, 그 어른이 또 다른 어른에게 받은 상처, 이렇게 되물림되어 내려온 아픔의 흔적들을 좇다 보면, 너무 원론적인 문제로 들어가고 만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어디서부터 부정적인 것들이 생겨난 것인가.
어찌됐든, 어른이기에, 아이의 삶을 한 차례 겪었고, 아이들보다 경험이 더 많고, 그 아이들을 만들어냈기에 우선은 품어야 한다. 공감해야 한다.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라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 찍을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문제 그 자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 다사로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은 청자와 같은 기관에 오지 않는다.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도 격리시킨다. 그게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평가된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적었다. 아이들을 긍정해 줄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내가 지금은 힘이 없어서, 미안해졌다.
내가 해야 할,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힘에 관한 것이다. 힘이 무엇이며, 어떤 힘이 필요한지를 알고 그에 따라 선택하며, 어떻게 힘을 키울 것인가의 방법을 찾고, 관념을 벗어나 행동하는 것이다. 그에 관해서, 지금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겠다. 이 고민이 어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6일 동안의 견학실습 기간. 매일 매일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견학만 한 실습만으로도 이만큼 긴장하고 피곤했는데 앞으로 4주 남짓한 시간을 잘 채워나갈 수 있을까. 친구랑 얘기하면서, 걱정이라는 말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친구의 이야기, 내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합치면 이야기의 절반 남짓은 실습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애정에 다시금 놀랐다. 자그마하고 귀엽고 장난끼로 가득한 동글동글한 사대부중 1학년 6반 친구들, 일주일 동안 하루에 얼굴을 마주한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 참 많이 반겨주고, 인사해주고, 관심 보여주고, 작별인사도 따뜻하게 해주고, 아쉬워하는 아이들, 그중 마음에 난 상처를 보여준 아이들. 난 일주일만 있을 거란 생각에 너무 가깝게 지내선 안 되겠다고 마음에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었는데 더 많이 정을 주고, 더 많이 얼굴 보고, 더 많이 따뜻하게 이야기할 걸, 아이들만큼 마음을 열지 못해서,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 이상으로 참 고마웠다. 아이들이 참 예뻤다. 하루, 이틀 지났을 뿐인데도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좋은 선생님 밑에서 어린이를 넘어서서 차츰 자라게 될 아이들, 교실 뒤에 붙인 나뭇잎 꿈들이 뿌리내려서 크게 크게 자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주일 동안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참 많았다. 앞으로 새롭게 만날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내 모습만으로도 진솔한 선생님이고 싶다. 진심어린 마음을 품은 선생님, 거짓되지 않고 참된 마음을 보이는 선생님, 온맘을 다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으로 한 달 동안, 난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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