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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시게이츠 기요시, 말더듬이 선생님

by 리을의 방 2015. 12. 23.
2010.4.

언젠가 영화<파랑새>를 봤다. 중학생들의 이야기였고, 따돌림 문제가 나왔고, 결못남의 아베 히로시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학생의 고민을 언제나 귀담아듣는, 그래서 모두가 서로 돕는 것을 강조하는 학교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선생님이 임시교사로 왔다. 이상적인 학교 같지만 실은 심한 따돌림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다른 학교로 떠난 학생이 있었다. 학교는 허상 같은 파랑새 상자(상담함)와 포스터, 교훈 등으로 문제를 덮고 있었고, 학생들은 위선인 줄 알면서도 외면의 평온을 지켜주므로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임시교사인 무라우치 선생님은 전학 간 학생의 책상을 갖고 와서는 언제나 진심으로 학생에게 인사한다. "노구치, 안녕." 잠잠하던 반이 조각조각 갈라지고, 그 중 한 학생은 가해자라는 죄책감과,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회피의식, 구역질나는 위선에 혼란스러워한다. 어느 것이 옳다 말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갈등과 혼란을 그대로 풀어놓은 채, 영화는 끝이 난다. 

담담한 영화였다. 그래서 생각이 더 복작거렸다. 아이들마저도 위선에 동의하고, 옳다고 믿는 모습이 씁쓸했다. '무엇이 너희를 이렇게.'라고 어느 하나를 지목해서 탓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맞았다. 

영화가 가물가물해질 즈음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았다. 영화와 다른 점은, '파랑새'는 하나의 단편이었고, 선생님의 말이 더 많다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는 말 몇 마디와, 말없이 일관된 행동, 표정으로 선생님의 진심을 보여준다. 책에서는 선생님의 가치관을 읽어내기가 쉬웠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 경계가 불분명하긴 하지만 서로 다른 입장에서 상황을 보고 싶기도 했고,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고 싶기도 했다. 

답은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내 한계 때문에 갑갑해하면서, 어느 순간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답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인데, 정해진 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을, 만약 답이 나왔다 해도 나는 이면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건 아니라고 비죽거렸을지도 몰랐다. 답은 없는 대신 선생님의 자세를 배웠다. 아무리 말이 막혀도 해야 할 말은 반드시 진심으로 하는 선생님이 좋았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다 안다는 체 하지 않고, 그저 같은 눈높이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무게감이 좋았다. 

어른의 습성. 이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위선으로 조금씩 포장하는 것이 어른의 습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술자리에서 눈치를 살피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만남에서 겉치레로 하는 인사나 형식적인 태도일 수도 있겠다. 또한, 상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그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고 막아버리는 것. 내가 못했으니 너는 해야 한다는 것. 비겁해지는 모습을 세상은 그런 거라며 다 안다는 듯 덮어버리는 것.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 아이일 땐 이런 모습들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내 습성이 되고 있었다. 

아이의 말에 공감하는 것보다도, 선생님의 모습에, 어른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더 많이 느꼈으니 이제는 어른에 가까웠다. 아이였을 때 마음을 잊어버리고, 아이였을 때 부정했던 행동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 또한 부끄러운 어른이 맞았다. 

아이들을 오래 만나오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잘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다. 진심이 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아이가 지닌 가능성을 믿으면서,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아이를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것. 그런데 가장 어렵다. 조급한 마음과 매서운 말이 앞선다. 결국은 너도 나도, 사람인 것을. 

무라우치 선생님의 모습에, 영화 '굿윌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대사가 겹친다. "It's not your fault."
나, 더 잘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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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이츠 기요시,<말더듬이 선생님>, 웅진지식하우스. 

단편 '진로는 북쪽으로'

중요한 것만 잊지 않으면 시노자와는 어떤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살인자는 되지 않을 거야.

"선생님……."

"응?"

"중요한 것과 옳은 것은 다른가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뭐야, 그게. 무책임해. 눈가를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잘은 모르지만, 중요하지 않지만 옳은 건 있단다. 어쩔 수 없지만 옳은 것 역시 있고. 사실은 잘못된 건데 옳은 것도 있단다.

그런 건 많다. 신문이나 뉴스에도 자주 나온다. 옳지 않지만 중요한 것도 있단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데 중요한 건 절대로 없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중요한 거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대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싫어, 하고 교실에서 누군가 웃는다. 잠깐만 기다려, 하고 누군가 복도를 뛰어간다.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옳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선생이 된 게 아니다."

"……그러면 어떤?"

"나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싶단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선생님은 '중요한 것'을 다 전했다는 듯 깊게 기분 좋은 듯 한숨을 쉬었다. (43쪽)

단편 '뻐꾸기알'

네. 손은. 이제. 싫어하는 뭔가를 비틀고 부수기 위한 손이 아니야. 소중한 뭔가를 꽉 움켜쥐고 그리고 소중한 뭔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기. 위한. 손이야. 어른이 된 거다. 선생님은 말했다. 너는 이제 어른이야.

바로 이 거리다. 손을 맞잡고, 말보다 먼저 목소리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 거리가 어린 시절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곁에 있어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곁'이란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다. 목소리의 온기가 전해지는 거리다. (345-346쪽)

선생님은 이 동네 중학교에서 2학년 여학생 곁에 있어주었다고 했다. 심한 따돌림을 당해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그 애에게 선생님은 소중한 것을 전해주고 학교를 떠난다.

선생님은 도와줬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구했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안도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늦지 않았다'고만 한다. (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