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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2011.12.2.

by 리을의 방 2015. 12. 23.
잠드는 시간이 매번 왔다갔다 해서 큰일이다. 내일 수업 준비한다고 책 뒤적이다가, 딴짓 하다가,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벌써 청소 차가 지나다닌다. 생각이 복작복작, 아이들 생각, 일 생각,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한 생각. 젊은이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군, 행동은 매우 조금 하는 대신 - 이라던 소설 한 줄이 마음이 콕 박혔다. 

여름부터 아이들에게 철학교실을 열고 있다.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멎기도 전에 얼떨결에 중2들을 맡게 되었고, 철학을 공부한다기보단 놀잇거리 몇 개씩 준비해서 아이들과 놀이하고 수다떨고 색지를 자르고 붙이며 그렇게 채워나가고 있다. 나에 대해, 생활에 대해, 삶에 대해, 큰 폭의 주제를 작은 것들로 건드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 아이들과 나누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고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강점이 보여서 이 시간이 즐겁다. 그렇지만 자질 부족이란 생각이 당췌 떠나질 않아서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은 매번 오늘처럼 잠을 못 잔다.

자료를 찾다가 써머힐에 대한 글을 한참 읽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리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찾고 행복을 느낀 아이들. 그렇게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써머힐의 아이들. 써머힐에서는 당신은 아이들을 믿을 수 있고, 아이들이 스스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을 믿으라고 말한다. 요즘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너무 허용적인 사람인가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 아이들과 기관 사이에, 선생님 사이에 생기는 여러 마찰 상황에서 내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인지, 나름의 원칙이 실은 효력이 없었는지, 제 역할은 다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 내 방법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떨어지니 여러 벽에 맞부딪치며 고민스럽다. 아이들을 믿지만 사실 온전히 아이들을 믿는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보전하려 하지만 기관의 입장에서, 다수의 입장에서 억누르는 상황도 생긴다. 이곳은 아이들이 행복한 곳일까, 아이들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나는 아직 망설여진다. 

배움이 어디 아이들 뿐일까. 내 안에도 채워야 할 공간이 너무도 크다. 그렇지만 교육과 복지가 중첩되어 있는 영역에서 해야 하는 역할이 너무 많아 버겁다. 내 전공은 무엇이라고 자신할 수 있듯이, 이 자리에서 내가 자신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선택과 집중. 쉽게 풀리지 않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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