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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감정

by 리을의 방 2016. 4. 14.
김소월의 '님에게'를 한참 들었다. 김정화와 하림의 목소리. 음절을 꾹꾹 딛는 목소리. 잃어버린 설움이외다 하고 혼자 부르곤 했는데,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었다. 잃음과 잊음을 생각했다. 잃음을 잊음으로 딛는 것이, 덜 아플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시인하는 일이 어려웠다. 마주하지 못하고 비스듬히 비껴난 때가 많았다. 잃는 일도 잊는 일도 두려웠다. 괜찮았고 괜찮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잘 지내지 않았다. 허정허정 걸으며 내 시간을 살았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혼자 걸었을 뿐이라고, 나는 자꾸 자책했다. 아버지의 요금고지서를 내손으로 옮겨 놓고도 한 달이 되지 않아 나의 감당을 걱정했다. 꼭 보고 싶었던 친구의 결혼을 챙기지 못했다. 돌아가기 전날까지 고민하는 마음을 견디기 어려웠다. 오그라든 마음도 몸도 잘 펴지질 않았다. 풍족하지 못한 마음이 미웠다.

나는 잘 지낸다고 말을 할 테고, 말의 무게대로 지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나는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 있겠다.

감정을 시인했다. 취소했던 표를 다시 샀다. 망설인 탓에 시간이 늦었고 구두를 신고 달리다가 발뒤꿈치에 피가 철철 났다. 빈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201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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