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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2011.10.16.

by 리을의 방 2015. 12. 23.
퇴근하고 정신없이 자다 일어나니 새벽 두 시. 졸리면 낮에 좀 졸지 마음이 드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지난 한 주는 안팎으로 게으름만 잔뜩 부렸다. 밀린 빨래나 난장판이 된 집이 그렇고, 사무실 일도 밍기적거렸다. 한 주의 여파에 나는 또 곧 허덕이겠지. 밀린 일들이 좀 겁이 나서 일단은 빨래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덜컹덜컹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아이들도 다 보내고 정리를 하는데 건물 입구에 불량해 보이는 아이들을 조심하고 무시하라는 아이의 문자가 왔다. 창밖으로 보니 어린 친구들이 웅성거리며 한 무더기 모여 있었다. 아이들끼리 서로에게 위협을 느끼는 기준은 무얼까 궁금해지면서도, 어린 동생 보호하듯이 걱정해 주는 고쓰리 남학생의 마음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대단한 가치관이나 사명감 이런 것보다도, 시덥지 않은 수다도 깔깔대며 나눌 수 있는 소소한 일상과, 이따금 따뜻하게 돌아오는 마음의 반동이 좋아, 나는 여기에 있다. 

실은 어렵다. 여러 해를 보내면서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지 사람이 일이 쉬워지진 않는다. 지난날 겪은 어려움을 다시 맞닥뜨릴 때마다 여전히 해결능력이 없어서 반복된 무력감을 느끼고, 새로운 일에 쿵 부딪치면 당혹스러움에 중심을 잡지 못해 지난 시간 동안 대체 난 뭘 한 거지 자책이 든다. 자아를 탐색하는 아이들의 곁에서 가치혼란과 자아성찰을 곱절로 하는 내가 버거워 때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래도, 열 가지의 강점이 필요하다면 그 중 두 개 정도는 내게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것을 내 힘으로 삼아 여기까지 잘 버텨왔다고, 오늘 같은 반동을 약으로 받으며 기운을 낸다. 

예전, 여기 저기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 실마리가 보인다고, 못된 아이는 없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가 있을 뿐이라고, 마음이 합의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나를 지지해주었던 문장들. 내가 너무 느슨한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내 행동이 좋지 않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우면서도 아이들의 날선 마음 옆에서 잠시 기다려주다 보면 실마리가 보이고, 이유가 있었고, 마음이 읽힌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상황도 많아 도를 닦아야겠다고 머리를 쿵쿵 찧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아이들에게 다른 문제 해결 방법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냥 그 마음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좀 지쳐서 한 주 동안 하지 말아야 할 생각까지 들어 고민스러웠다. 다른 책을 사다가 공고 친구들이 쓴 시집을 함께 사서 읽었는데 노스 바막 간지템 이런 말들이 귀여워서 피식 웃고 말았다. 나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잘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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