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아이들 곁, 2006~2015

2011.8.6.

by 리을의 방 2015. 12. 23.
2박 3일의 하이킹을 마치고, 얼마만인지 모를 간만의 프라이데이 나잇, 이었으나. 자려고 누운 오후부터 핸드폰은 불이 나고, 결국 잠은 포기하고 빨래도 하고 병원도 갔다오고 시청도 한 바퀴 돌고 장도 보고. 캠프 마치고 이틀 내내 기절해 있으려고 했더니 오늘도 아침부터 급한 일이 생겨서 비몽사몽인 채로 그렇게 이틀이 지나간다. 밀린 집안일이나 해야지 하고 이불도 돌렸는데 빨래 널 힘도 안 난다. 

아이들과 함께하다보니, 없는 체력도 쥐어짜내야 하고(생각보다 체력이 괜찮았던 걸지도 모르고), 장난처럼 말을 통통 받아치는 여유도 생긴다. 힘이 죽죽 빠져도 웃을 힘은 난다. 때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래야 하는 상황이 내 발목을 잡지만, 이제는 일이 아니라 삶이 되어버린 만남들, 사람들.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일이 아니라 삶이어서 참 좋다. 이 일을 택하길 참 잘했다. 

빨래에 온통 모래 천지다. 바닥에도 데굴데굴 구르는 모래들, 머릿속에도 모래알갱이처럼 데굴데굴 구르는 잡념들. 힘들다는 말을 쉽게 뱉기보다는 힘들어하는 사람을 품어야 하는 내 일과 내 상황. 비틀거려도, 그래도 잘 버텨온다고 생각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는, 아니다. 무게중심이 자꾸 치우쳐서 찾아야 하는 요즘. 연관 없는 상황들이 힘들다는 생각 하나에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조각이 맞춰진다. 따로 떼어져서, 이따금 조금씩 흔들리는 게 나았다. 모든 것들이 하나로 느껴지니 무게감이 배로 느껴진다. 투정을 부리면 일어난 힘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힘듦을 표현하는 데에 인색한 버릇, 어쩌면 그 버릇이 매번 내 발목을 잡는지도 모른다. 

지난밤에는 잠도 안 오고 영화관에 갈까, 상영표를 보고 있으니 전쟁도 싫고, 미국 구하는 슈퍼맨도 싫고, 속편은 재미없을까 걱정되고, 보고 싶던 건 시간을 놓쳤고, 머리 식히자고 보겠다는 영화에 뭐 이러나 싶어지니, 내가 그렇게 무난한 사람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상황이, 감정이 날 붙드는 게 아니라. 내가 복잡한,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마는 건지. 스스로 무던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마음을 쳐내고, 품지 못하는 건지.


'기억하고 > 아이들 곁, 2006~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10.19.  (0) 2015.12.23
2011.10.16.  (0) 2015.12.23
2011.7.26.  (0) 2015.12.23
2010.5.17.  (0) 2015.12.22
2010.5.6.  (0) 201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