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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4

상실을 생각했다. 1. 권여선의 소설을 챙기고 나왔다. 첫 문장은 그랬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2. 데몰리션을 보고 왔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을 말하지 않지만 실은 모두 상실이었던 이야기. 상실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을까. 가끔은 피식 웃기도 하며, 덤덤하게 상실을 마주했다. 삶이 무너지는 증상. 그리고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증상을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한다 알고 있었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은,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없는, 상실이란 낱말은, 사람은, 시간은, 그랬다. 덤덤히 마주할 수 있는 간극을 나는 갖고 싶었다. 3. 영화가 끝나고 해설을 더한 의사는 글을 씀으로써 감정을 서사화하는 경험을 말했다. 감정을 종렬로 세.. 2016. 7. 15.
캐롤, 손과 등 1. 금요일 밤, 캐롤을 보고 왔다. 어쩌면, 영화 자체보다 영화 보고 집까지 타박타박 걷는 길을 나는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오고 나서 시간을 얻었다. 책과 영화를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살았다. 타인의 이야기가 내 행간이 되길 바랐다. 내가 조금은 더 북적이길 바랐다. 영화가 끝나고 밤 열두 시, 붐비던 신촌길이 한산했다. 좋아하는 머플러를 둘렀다. 봄을 부르는 겨울비가 촉촉했다. 오늘의 걸음에, 시청에서 광양을 걷던 어제의 길이 포개졌다. 길도 마음도 붐비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오늘의 마음이, 오늘의 밤이 총총 수놓이면 나의 밤과 낮은 얼마나 든든할까. 문득 그런 생각도 했다. 2. 내 눈을 온전히 보아주는 사람. 내 어깨에 지긋이 손을 얹어주는 사람. 영화를 보기 전 이병률.. 2016. 2. 15.
죽은 시인의 사회 2009.9. 독서치료 과제로 한 인물의 인생경험이 발달단계의 갈등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서술하라는 문제를 보고 토드 앤더슨이 생각났다. 우연히 ocn에서 영화로 접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동영상도, 서점에서 산 책도 모두 열댓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을 가지고 중학교 때 졸업생 편지글을 읽었고, 고등학교 때 독후감 발표대회에서 말하고, 대학교 일학년 때도 교양과목 레포트에 롤모델로 키팅 선생님을 적었다. 무엇을 손에 쥐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잡기 위해 갈급해할 때, 역시 뚜렷한 실체는 없으면서도 내게 절대적이었던 한 이야기였다. 절대적인 무언가[그것이 정말 존재할지 아직도 나는 혼란스럽다]에 매달릴 때는 닐, 토드, 키팅 이렇게 세 사람만 크게 보였는데, 조금 전 오.. 2016. 1. 9.
시게이츠 기요시, 말더듬이 선생님 2010.4. 언젠가 영화를 봤다. 중학생들의 이야기였고, 따돌림 문제가 나왔고, 결못남의 아베 히로시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학생의 고민을 언제나 귀담아듣는, 그래서 모두가 서로 돕는 것을 강조하는 학교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선생님이 임시교사로 왔다. 이상적인 학교 같지만 실은 심한 따돌림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다른 학교로 떠난 학생이 있었다. 학교는 허상 같은 파랑새 상자(상담함)와 포스터, 교훈 등으로 문제를 덮고 있었고, 학생들은 위선인 줄 알면서도 외면의 평온을 지켜주므로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임시교사인 무라우치 선생님은 전학 간 학생의 책상을 갖고 와서는 언제나 진심으로 학생에게 인사한다. "노구치, 안녕." 잠잠하던 반이 조각조각 갈라지고, 그 중 한 학생은 가해자라는 죄책감.. 2015.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