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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상실을 생각했다.

by 리을의 방 2016. 7. 15.
1.
권여선의 소설을 챙기고 나왔다. 첫 문장은 그랬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2.
데몰리션을 보고 왔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상실을 말하지 않지만 실은 모두 상실이었던 이야기. 상실을 이렇게도 그릴 수 있을까. 가끔은 피식 웃기도 하며, 덤덤하게 상실을 마주했다.
삶이 무너지는 증상. 그리고 삶이 무너지지 않으려는 증상을 생각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한다 알고 있었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은, 감히 이해한다 할 수 없는, 상실이란 낱말은, 사람은, 시간은, 그랬다. 덤덤히 마주할 수 있는 간극을 나는 갖고 싶었다.

3.
영화가 끝나고 해설을 더한 의사는 글을 씀으로써 감정을 서사화하는 경험을 말했다. 감정을 종렬로 세워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가지라 했다. 고장난 자판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실은 자기 이야기를 쓰는 남자. 자기 안의 서사를 풀어내는 일이 당신에게도 내게도 필요했다. 그것이 공간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서사를 서로 마주하기에 당신은 아팠고 나는 어렸다. 때를 놓쳐 여전히 속이 덜그럭거렸다.

4.
주정뱅이라는 낱말이 어느 때부터 측은하고 애틋했다. 간극을 나도 갖게 된 걸까.



2016.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