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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역8

담박(淡泊) 1.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은 淡泊, 단어가 좋다고 했다. 맑을 담. 머무를 박, 배댈 박, 그리고 잔물결 백. 담백하다고 보통은 많이 읽는데 박으로 읽을 때 뜻이 좋아 부러 담박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열일곱 살, 한문 시간 대부분을 졸면서 보낸 것 같은데 이날의 수업은 눈에 지금도 선하다. 담박한 사람. 담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다닥다닥 붙은 것이 너무 많았다. 2. 마당에 앉아 볕을 쬐다가 손에 눈이 닿았다. 툭 터지고 아물며 생긴 손의 흉터들을 보다가, 상처와 딱지와 흉들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을 하다가, 부끄럽다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문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불거지고 붙은 것들이란 부끄러운 걸까.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을까, 나는. 3. 실레마을에서 다섯 날을 살았다. 여덟 시면 일어나.. 2016. 2. 10.
2016.1.29. 김유정역, 골드스타 G7, 코닥 울트라맥스 400 2016.1.29. 골드스타 G7, 코닥 울트라맥스 400 (Goldstar G7, Kodac Ultramax 400) 김유정역과 우문하우스. 실레마을에서 삼 일을 머물면서 필름 두 롤을 썼는데 신나게 찍었던 두 번째 롤은 다 날아가버렸다. 사진관에서는 필름통이 비어 있었다던데, 무엇이 문제였을지 모르겠다. 기억하는 풍경들이 있으니 그럼 됐다. - 원인 발견. 카메라 속에 필름이 찢어져서 돌돌 말려 있었다. 이날은 날이 흐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다. 친구였던 렉시오70이 고장나고, 여기저기 카메라 사이트를 보다가 골드스타G7을 찾았다. 내 사정에 맞게 저렴했고 금성 상표가 정겨웠다. 1983년에 생산된 카메라. 흠집 하나 없이 깨끗이 사용한 어느 주인이, 참 고마웠다. 골드스타.. 2016. 2. 5.
김유정역, 실레마을 보름 전, 오래된 필름 사진을 보다가 김유정역 사진에 마음이 닿았다. 1월 마지막 날에는 경춘선을 타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다짐까지 할 만큼 큰 일도 아니었지만, 움츠러든 때에 다짐이 거듭 필요했다. 생각한 다음날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고, 그 다음날 휴가원을 미리 냈다. 한동안 잘 쉬지 못했다. 일보다도 실은 건강하지 못한 책무감과 불어난 생각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2016.1.29. 긴 정산 일을 마치고 하루 연차를 쓴 날. 열한 시까지 늘어지게 잤다. 느지막히 나와 서강대역에서 상봉역으로, 김유정역으로 경의선에서 경춘선을 갈아탔다. 두 시 넘어 김유정역에 내렸다. 우문하우스로 가는 길, 강아지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쓰담쓰담 예뻐하고 있는데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와서 왜 고모한테는 가고 우리한테는 안.. 2016.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