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고양이 친구16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찬비가 후두둑 후두둑 굵다. 고양이 밥을 챙기러 잠깐 사무실에 왔다. 금요일에 그릇 가득 사료를 붓고 통조림도 열어주고 퇴근했는데 하루를 건너뛰고 오니 설거지한 것처럼 그릇이 깨끗했다. 비가 오니 어제 오지 못한 일이 더 미안해졌다. 기다리는 친구들은 오지 않고 비는 더 후두둑 내린다. 고양아, 고양아. 어디서 헤매니. 밥은 먹었니. 비는 잘 피하니. 지하철역 앞에서 빗길에 비둘기 둘이 무슨 공을 차며 노나 했다. 가까이 보니 삼각김밥을 둘이서 콕콕 쪼아 먹고 있었다. 버려진 것일지 누가 주었을지 제 몸의 반만 한 밥을 필사적으로 먹었다. 거리에서, 도시에서, 길의 동물들이 사는 방법. 아니 살아남는 방법. 사무실을 찾는 길고양이들이 짧게나마 다가오는 것도 곁을 내어주고 밥을 얻으.. 2016. 10. 23.
고양아, 고양아. 길고양이 식구들을 만난 지 한 달이 찬다. 세 주가 지나는 사이 아기들이 떠나 엄마 혼자 남았다. 한 아기는 별이 되었고 두 아기는 어디서 꼭 살고 있길 하며 마음으로 염려를 누른다. 아기들이 있을 땐 꼭 곁에서 지켜보고 밥도 항상 아기들이 우선이었던 모성이, 혼자가 되니 다시 어린 고양이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아기 하나가 축 늘어졌을 때 야옹 야옹 가냘피 울던 엄마는, 이제 밥을 잘 먹고 가끔은 벌레를 잡고 놀다 혼자 깜짝 놀라기도 하고 현관이 열렸을 땐 사무실 안까지 들어와 쓱 출근을 하고 가기도 한다. 다행이다. 엄마 고양이 너는 잘 먹고 털도 보드라워지고 있어 참 다행이라고, 밥 먹는 굽은 등을 보며 그저 잘 먹는 모습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 식구일 때는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섣불리 .. 2016. 10. 13.
관찰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며 고양이 밥을 두 그릇 챙기고 나왔는데 낮에 사무실에 들른 국장님이 밥이 다 떨어져서 사다 주었다 했다. 갈수록 먹성이 좋다. 한동안은 서서 밥을 먹고 작은 소리에도 귀를 세우며 긴장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살이 오른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프린터가 돌아가든 새소리로 장난을 치든 돌아보지도 않고 오래 앉아 오도독거린다. 창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사무실 풍경을 가만히 보기도 한다. 잠시나마 길고양이들에게 그리고 내게도 마음을 놓는 자리가 되어 고맙다. 요즘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친구들이다. 밤에는 고양이 자수를 놓고, 얼마 전 '고양이 춤' 영화를 찾아 봤다. 영화를 만든 시인의 이야기를 더 오래 듣고 싶어 '나쁜 고양이는 없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책 두 권을 구했다. .. 2016. 10. 2.
마음 1. 일하다 졸음이 와 커피를 사러 가다가 동물병원에 들렀다. 아는 것이 없어 조심스레 물어보고 내 커피값만큼 간식을 조금 사 왔다. 아기 고양이 혼자 한 그릇을 거의 먹었다. 엄마도 오래 앉아 아기가 남긴 간식을 먹고 사료도 먹고 하품 하다 쭈욱 기지개 펴고 쉬다 갔다. 조금 살이 오른 것도 같고, 잘 먹고 눈을 마주해주는 시간도 늘어 그저 그 모습이 좋다. 아직은 섣부르지만 작은 생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참 오랜만이라 바라만 보아도 좋다. 오늘은 몸이 조금 으슬으슬했는데 창을 닫으면 고양이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봐 미뤘다. 엄마와 막둥이는 왔는데 아기 둘이 종일 보이질 않아 걱정이 된다. 내일은 꼭, 꼭, 오렴. 2. 십자수와 종이접기 책은 나누어주세요, 하고 아이가 남긴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먹.. 2016. 9. 29.
새 친구 사무실에 길고양이 친구들이 한 주째 온다. 그전부터 오갔던 걸 이제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잘 아는 국장님이 밥을 사다주었고, 사무실 식구들이 돌아가며 밥을 챙긴다. 출근할 때, 열두 시에, 서너 시쯤 새참으로, 여섯 시에, 꼬박꼬박 밥 먹으러 온다. 아가들만 조심스레 와서 먹고 가더니 어제는 엄마도 경계를 풀었는지 그릇에 얼굴 박고 폭 앉아 밥을 먹고 졸다 간다. 아가들은 놀고 나무를 타고 밥을 먹고 흙을 파고 똥도 누고 또 앉아 논다. 아가는 아가인지 세상 모든 게 신기한가 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도, 날아가는 벌레에도, 동그란 눈을 반짝거린다. 한 팔 거리에 앉아도 이젠 가만히 앉아서, 저 큰 동물은 뭔가 싶은 얼굴로 그 예쁜 눈을 깜박거린다. 일하다 창밖에 오가는 고양이들 살피는 일.. 2016.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