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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4

캐롤, 손과 등 1. 금요일 밤, 캐롤을 보고 왔다. 어쩌면, 영화 자체보다 영화 보고 집까지 타박타박 걷는 길을 나는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 오고 나서 시간을 얻었다. 책과 영화를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살았다. 타인의 이야기가 내 행간이 되길 바랐다. 내가 조금은 더 북적이길 바랐다. 영화가 끝나고 밤 열두 시, 붐비던 신촌길이 한산했다. 좋아하는 머플러를 둘렀다. 봄을 부르는 겨울비가 촉촉했다. 오늘의 걸음에, 시청에서 광양을 걷던 어제의 길이 포개졌다. 길도 마음도 붐비지 않았다. 낯설지 않은 오늘의 마음이, 오늘의 밤이 총총 수놓이면 나의 밤과 낮은 얼마나 든든할까. 문득 그런 생각도 했다. 2. 내 눈을 온전히 보아주는 사람. 내 어깨에 지긋이 손을 얹어주는 사람. 영화를 보기 전 이병률.. 2016. 2. 15.
바람을 쐬고 싶었다. "나 대신, 다 다녀줄래요?"이 말에 나는 내 어깨를 부딪쳤다. 적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태어나 평생 16만 킬로미터를 걷는다고 한다. 그 길이가 무려 지구 세 바퀴. 16만 킬로미터보다 더 넓은 가슴을 가진 한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게 터지게 터지게 좋았다. 나는 어딘가로 갈 때마다 그 말이 담긴 작은 상자를 가방에 담았다. 그 가방은 아무리 다른 뭔가를 넣어도 무겁지 않았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달. ________ 바람을 쐬고 싶어서, 가게 간다고 갈아입은 옷이 아쉬워서, 타박타박 걸었는데 늦은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소란스런 카페에서 이어폰 볼륨 높이고 내 동굴을 만드니 마음이 나아졌다. 좋은 문장을 베껴쓰니 말들이 내것이 된 것 같았다. 더 어릴.. 2016. 1. 9.
이병률, 새날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는다.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생각이 많아지는 밤. 생각이 너무 많이 스며서 내 허리도 휘었나 보다. 2016. 1. 4.
이병률, 찬란 호흡을 가다듬는 시가 있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있다. 한 구절 한 단어, 마디마디 담긴 의미가 명료하게 해석되진 않아도, 행간에 자간에 마음으로 전해오는 미묘한 떨림이 마냥 좋은 시들이 있어 이따금 시를 찾는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내려두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결국, 생각이라지만. 넋놓고 풍경을 보듯 정서의 풍경에 빠져 몇 번이고 곱씹는 시행의 울림에 위안받고 싶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시는, 소설 한 권만큼이나 내게 묵지근하다. 빛나는 단어는 내게 어색하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부터 궁극의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하루를 딛는 일이 무거웠다. 하루를 잘 살아냈으니, 또다른 하루를 잘 맞이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동을 인정.. 2015.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