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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어제와 오늘

허정허정 헤매는 날을 보내는 방법

by 리을의 방 2015. 12. 15.

대구역 근처였던 것 같다. 역을 조금 지나니 오래된 집들이 나왔다. 하숙집들이었는데 인부아저씨들이 사는 것 같았다. 맥아리 없이 허정허정 걸어도 낯선 곳이니 괜찮았다. 물집이 터지도록 헤맸는데 그날은 퉁퉁 부은 발마저 좋았다.

사진은 꽤 괜찮은 도구다. 오래 묵어도 그날의 질감이 살아난다. 자주 듣던 노래도, 끄적여둔 메모도 괜찮다. 끄적이는 일이 미니홈피에서 블로그로 이어졌다. 어떤 날은 못 견뎌서 찢거나 지우거나 버려두기도 했었다. 지금은 좋으면 좋은 대로, 버거우면 버거운 대로 안고 갈 수 있겠다. 진작 그랬으면 좋았겠다.

대학생 때 소설을 배우면서 일상을 과거형으로 쓰는 버릇을 들였다. 오랜 일처럼 쓰고 나면 어떤 일이든 안녕, 하고 잘 보낸 것 같았다. 그 버릇이 사진에도 번졌다. 오래된 느낌이 낯설면서도 좋아 토이카메라를 종종 썼다. 찍을 때보다 더 옛날같은 사진을 보면서 그날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맞닿으면 왠지 괜찮았다.

낯선 길을 허정허정 헤매는 마음이 다르지 않은 날이 가끔 왔다. 그런 날을 보내는 방법을 조금씩 만들었다. 어느날 또 낯선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구불구불한 샛길을 일상에 많이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겠다.

코니카 렉시오70, 투도르200, 대구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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